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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對北 쌀수송선 시 아펙스號 金禮民선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북한에 보내는 쌀 2천t을 청진항에 하역한 뒤 30일 오전 부산항에 귀환한 남성해운소속「시 아펙스號」 김예민(金禮民)선장은『국민의 따뜻한 동포애를 북녘동포에 전하는 첫 항해를 무사히끝내 감회가 깊다』면서『그러나 태극기를 강제로 내 리게 하고 인공기를 게양하도록 한 북한측의 행위는 분명히 국제관례를 무시한 처사로 아쉬움이 크다』며 불편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다음은 金선장과의 일문일답.
-태극기를 내리게 된 경위는.
▲26일 오후5시쯤 시 아펙스호가 청진항 도선묘지에 들어갔을때 청진항 도선사(渡船士)가 승선해 청진항으로 들어가던중 태극기를 내리고 인공기를 게양할 것을 요구,국제관례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단호히 거부했다.
도선사와의 국기 게양문제가 합의가 안돼 청진항 부두밖 0.5마일 해상에 정박해있던 중 오후7시25분쯤 청진항 항장(항만책임자.50세가량)이 승선,『선장을 비롯해 전선원의 신상에 해로우니 국기를 내리고 인공기를 달라』고 협박해 하는 수 없이 선미의 태극기를 내리고 도선사가 가지고 온 인공기를 마스트에 달았다. -당시의 심경은 어떠했나.
▲북한동포를 도와주기 위해 쌀을 싣고 간 선장으로서의 자긍심이 싹 가시고 수치심마저 들었으며 선장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해 정부에 미안한 마음을 금할수 없다.
-청진항의 모습및 북한주민에 대한 인상은 어떠했나.
▲60년대말의 우리나라 항구모습과 흡사했다.5층짜리 아파트도간혹 눈에 띄었으나 멀리서도 벽면에 금간 것이 보일 정도로 낡았으며 아직 우마차가 다니는등 전반적으로 조용하고 허름한 항구로 보였다.
인공기 게양을 강요한 항장을 제외하고는 세관직원과 도선사등 접촉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친절했다.
-하역작업은 어떻게 이뤄졌나.
▲27일 오전 9시30분부터 시작된 하역작업은 무장군인 3명이 선수와 선미,중간지점의 부두에 한명씩 배치돼 선박 승.하선자의 신분을 일일이 확인하는등 삼엄한 경비를 펴고있는 가운데 진행됐다.
크레인은 일제 때 설치된 매우 낡은 것으로 작업중 3~4차례고장이 났으며,화차도 53년에 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청진항에 머무르는 동안 어떻게 지냈나.
▲청진항 부두에 접안한 26일 오후7시30분쯤 조선삼천리총회사 강현명과장이 저녁식사 초대를 해 나를 비롯한 선원 13명이부두에서 1백여m 떨어진 3층짜리 천마산호텔에서 중국음식으로 저녁식사를 한 것을 제외하고 줄곧 선내에서 생활했 다.
두시간 가량 식사를 하는동안 강과장에게 하역기간중 태극기를 달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자『알아보겠다』는 답변을 들었을뿐 주로 음식에 대한 얘기만 나누었다.
북한 영해에 진입하자 도선사와 항만관계자.세관직원들이 승선,선원들이 소지하고 있던 카메라와 선박에 있던 통신시설.쌍안경등을 모두 수색해 통신실에 모은뒤 봉인해버려 기념촬영이나 청진항모습을 자세하게 관찰할 수 없었다.
-북한주민들이 한국에 대해 어떤 관심을 보였는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서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으나 청진항을 떠날때 접촉한 세관직원이 남한의 지방선거가 어떻게 됐는지묻는등 한국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있고 관심이 많은 듯 보였다.
-지금 심정은.
▲북한에 제공하는 쌀 운송을 무사히 마쳐 보람을 느끼면서도 태극기를 내리고 인공기를 단데 대해 아쉬움과 미안함이 적지않은등 만감이 교차한다.
또다시 쌀을 싣고 북한으로 갈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현재로서는가고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釜山=姜眞權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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