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겨울연가풍 드라마로 한국어 가르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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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교오와(오늘은)' 하는 순간 머릿속이 텅 비더군요. 그 다음에 '아타라시 한구루 코조노(새 한글 강좌의)'하곤 저절로 긴 한숨이 나왔고요. 인사말 세 줄을 제대로 말하기까지 무려 세 차례나 NG를 냈지 뭐예요."

김진아(32)씨는 자신의 첫 방송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지난 5일부터 일본 NHK 교육채널의 '안녕하십니까 한글강좌'(매주 화요일 밤 11시부터 25분간)의 강사를 맡고 있다. 그의 '엄살'과는 달리 지도교수이자 감수를 맡고 있는 도쿄외국어대 노마 히데키(野間秀樹) 교수의 평가는 후했다.

"정말 잘해요. 예전 한국어 강좌가 문화.영화 등을 소개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이번엔 언어 자체를 가르친다는 점이 다르죠."

사실 NHK가 애당초 강사로 염두에 둔 사람은 김씨가 아니라 히데키 교수였다. 그러나 히데키 교수는 "나 같은 '노털'보다는 젊은 사람이 해야 한다"며 김씨를 적극 추천했다. 그만큼 신뢰했던 것이다.

NHK로선 파격적인 기용이었다. 1984년 한국어 강좌가 시작된 이래 한국 국적자가 강사 역을 맡았던 것은 단 한 차례, 그것도 초기에 재일교포 뿐이었다. 한국 출생자론 그가 최초다. 더욱이 최연소 강사이기도 하다.

NHK는 결정을 내리기 전 비밀리에 그가 진행하는 수업과 세미나를 보고, 연구 논문도 검토했다고 한다. 주 진행자이면서 동시에 문법을 설명하고 회화 연습도 시키는 등 방송 중 강사의 비중이 막중하기 때문이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방송 교재도 직접 집필한다. 그 뿐 아니다. 지난해 12월 강사를 맡기로 결정한 뒤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겨울연가'같은 드라마를 제작.방영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올리자는 것이었다. "처음엔 무리라고 했어요. '가나라다' 부터 배우는데 어떻게 드라마로 만들 수 있겠느냐고…. 촌스러울 것이란 걱정도 했고요. 일단 만들어서 보여줄 테니 아닌 것 같으면 그때 그만두자고 설득했죠. 그 뒤 며칠밤을 새서 시나리오를 완성했어요. PD가 시나리오를 보곤 '이거라면 드라마를 만들 수 있겠다. 투자하겠다'고 하더군요."

강좌 중 나오는 한 회 3분 30초짜리 25부작 드라마 '그대 바람 속에'를 말하는 것이었다. 한국인 남학생과 일본인 여학생 간의 사랑 얘기가 골격이다. 그는 계면쩍어 하며 "학습용 드라마 맞느냐는 칭찬을 들었다"고 했다.

그에게 독도 문제의 영향은 없느냐고 물었다. "한국을 좋아하는 분들은 여전히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어 공부도 열심히 하세요. 개인적으로 한국이 싫다고 얘기하는 분을 만나보지도 못했는걸요."

1995년 경기대 일문과를 졸업한 그는 도쿄외국어대에서 2000년 석사학위를 딴 뒤 2003년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3년 4월부터 도쿄외국어대 등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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