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 프로 진행 홍석천 “세금 내고 투표하고 군대도 가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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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 사업가로, 드라마에 복귀하는 연기자로서 홍석천 (37·사진)을 만나 인터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성적 소수자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하는 tvN 프로그램 ‘커밍아웃’의 진행을 그가 맡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난 다음이었다.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그는 꼼꼼하게 질문 내용을 챙겼다. ‘그 이야기’만 물어볼까 봐 저어하기도 했지만 결국 응했다.

“어떤 인터뷰에서 2시간을 이야기했는데 가십거리만 기사로 나왔어요. 그래서 조심스럽더군요.”

그런데도 자칫 논란을 부를 수 있는 ‘커밍아웃’ MC를 맡기로 했다니.

“저도 알죠. 무모한 짓 같아서 막판까지 안 맡겠다고 했었고요. 그런데 바꿔 생각하면 멍석 깔아 줄 프로그램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성애에 대한 시선도 부드러워졌고, 요즘 친구들은 진정한 내가 누군지 말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잖아요. 근데 계기가 없어요. 가족·친구·직장동료 일일이 만나서 ‘어떤 고민이 있어 커밍아웃한다’고 설명하기는 힘들거든요.”

이날 홍석천은 첫 출연자인 남자 대학생과 만난다고 했다. 그 학생은 하루 열두 번씩 바뀌는 마음을 다잡고 카메라 앞에 서기로 했다.

“대한민국에서 TV에 나와 커밍아웃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감당해 낼 사람이 과연 있을까….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PD한테 절대 억지로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았어요.”

망설임도 걱정도 많았지만 어쨌거나 방송은 전파를 탄다. 케이블 방송이라도 이런 프로그램이 등장한 건 커다란 변화다. 2000년 9월 커밍아웃한 그는 방송에서 쫓겨났고, 한때 택시도 잡아타지 못했다.

“제가 원래 사람 많은 데 다니는 걸 좋아해요. 얼마나 달라졌나 보려고 일부러(웃음). 동대문 시장에 가 봐도 어르신들이 ‘밥은 먹었냐’ ‘사인해 달라’며 좋아하세요.”

그런데 참 신기하단다. 시장 어르신들도 달라졌는데 ‘윗분’들은 그대로라고. 이명박 대통령 얘기가 나왔다. “남녀가 결합해서 사는 것이 정상이기 때문에 동성애에 반대한다”라고 했던 후보 시절 인터뷰 얘기였다. 답답한 게 많은지 목소리의 톤이 높아졌다.

“소통의 문제예요. 안 들어 봐서 모르는 거예요. 그들의 삶이 얼마나 피폐한지 생각을 안 해본 거죠. 이 대통령께서는 독실한 교인이잖아요. 저도 그래요. 제가 아는 동성애자 중에도 소망교회·충현교회·온누리교회 교인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대통령 옆에서 기도하는데 모르고 있을 뿐이잖아요. 국회의원 자식 중에도 (동성애자가) 있을 수 있고, 그 자식이 자식을 낳아도 있을 수도 있는데 왜 생각을 안 해주는 거예요.”

그는 작정한 듯 말했다.

“음… 대통령 얘기가 나왔는데, 한번 뵙고 싶어요. 그분도 선거를 치르면서 억울한 게 있었을 거예요. 맞다고 해도 주변에서 아니라고 하는 게 있었겠죠. 저희도 똑같아요. 지금 저는 맞다고 하지만 주변에선 아니라고 한단 말이에요. 이럴 땐 서로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데, 이 대통령은 저희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우리도 납세하고 투표하고 군대 가는 국민인데.”

그렇다면 당신은 뭘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과거엔 민노당에서 관련 활동도 하더니 지금은 너무 얌전한 게 아니냐고.

“사회가 바뀌었잖아요. 동성애 얘기하면 난리가 났었는데 이젠 안 그래요. 제가 열변을 토하지 않아도 되죠. 그리고 민노당에 실망한 것도 있어요. 말만 앞서고 행동 못 할 거면 잘할 사람에게 공을 넘기든가. 그래서 저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풀뿌리로 하고 있어요.”

대학 강연은 물론 레스토랑 사업도 그가 생각한 풀뿌리의 하나라고 했다.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2002년 가을에 식당을 열었는데, 저를 보고 나가는 손님도 있더군요. 자리 잡기까지 1년 반 걸렸어요. 처음엔 너무 장사가 안 돼 포기하고 싶었지만 ‘홍석천 커밍아웃하고 레스토랑 차렸는데 문 닫더라. 역시 안돼’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 죽어라 열심히 했죠. ‘쟤를 욕하고 무시할 게 아니구나’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개인적인 투쟁이죠.”

그 결과인지 그는 그동안 레스토랑 세 곳의 사장이 됐고, 방송 활동을 재개한 데다 자신이 누군지 말할 수 있게도 됐다. 그렇지만 또 다른 꿈이 있다고 했다.

“저는 아이들을 좋아해요. 커밍아웃할 때 ‘뽀뽀뽀’를 그만뒀는데 어린이 프로그램을 다시 하고 싶어요. 그렇게만 되면 대한민국에서 인간 홍석천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겠죠.”  

글=홍주희,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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