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꿈의 京平축구' 다시 볼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 1934년 4월 서울의 배재고보 운동장에서 벌어진 경평전에서 양팀 선수들이 접전을 벌이고 있다. [중앙포토]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서울 LG'(가칭)와 평양시 축구단이 일전을 벌인다. 서울에서의 경기지만 적지 않은 실향민 가족들은 북한에서 온 응원단과 함께 "평양 이겨라"를 외친다. 김은중(서울)의 헤딩슛이 평양의 골키퍼 장진혁의 선방에 막히자 관중석에서 탄식이 쏟아진다.

1946년 중단된 '경평전(京平戰)' 부활 희망이 가까이 다가왔다. 9년 만에 서울 연고 프로축구단이 탄생하면서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11일 이사회에서 프로축구 안양 LG의 서울 연고 이전을 공식 승인했다. 서울을 대표할 팀이 생기면서 서울-평양 정례 축구경기의 요건이 갖춰진 셈이다.

한민족 동질성의 상징이던 '꿈의 경평전'. 정치.외교적 변수는 많지만 스포츠 교류라는 점에서 가능성은 크다.

이명박 서울시장도 지난달 서울시청 여자축구단을 창단하면서 "오는 8~9월께 여자축구 경평전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평전 부활은 그의 야심적 프로젝트다. LG의 입성을 계기로 더 큰 탄력을 받게 됐다.

이시장은 안양 LG와 부산 아이콘스의 서울 입성 경쟁 때 "부산 아이콘스가 서울에 온다면 부산시민과 서울시민 사이에 싸움이 날 것"이라며 LG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LG 서울 입성→경평전 추진'을 염두에 뒀던 것으로 해석된다. 상황으로 봐 올해 안에 남녀축구 경평전이 동시에 이뤄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평양시 축구단은 북한의 남자축구 1부 리그(15개팀) 중 상위권이다. 2002년 9월 7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북통일축구(0-0 무승부)에 출전한 북한선수 23명 중 7명이 평양시 소속이었다. 골키퍼 장정혁은 북한올림픽위원회 장웅 위원장의 아들로 관심을 끌었고, 미드필더 김영준은 날카로운 중거리슛으로 시선을 모았다.

LG에도 김은중.박동석.김동진.박요셉.박용호가 당시 남측 대표로 출전했다. 박요셉은 "북한과의 경기는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경평전이 열린다면 서울의 명예를 걸고 열심히 뛸 것"이라고 말했다. LG 조광래 감독도 "K-리그 전반기가 끝난 휴식기에 경평전이 열리면 좋겠다. 북한의 축구 발전과 남북 교류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반겼다.

정영재 기자

◇경평전은=1929년 10월 8~10일 경성(서울)과 평양 팀이 서울 휘문고보에서 사흘간 경기를 가진 것으로 시작됐다. 일제 식민통치의 울분을 쏟아내고 민족의 동질감을 회복하는 성격의 자리였다.

제1회 경평전은 방문팀 평양이 2승1무로 완승했다. 다음해 11월 경성운동장에서 열린 대회는 양팀이 1승1패로 맞선 가운데 3차전에서 서울이 5-1로 대승했다. 경평전 사상 최다 스코어 차였다. 당시 서울 관중의 응원 열기는 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고 한다. 결국 35년 4월 13일 경기 후 양측 응원단의 충돌이 벌어지면서 경평전은 11년간 중단됐다.

경평전은 해방 다음해인 46년 한차례 더 열린 게 마지막이다. 김용식.김화집(이상 서울), 김영근.주영광(이상 평양) 등 경평전을 주름잡았던 스타들은 한국축구의 전통을 잇는 주역이 되었다. 역대 전적은 평양이 21전9승7무5패로 앞서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