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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남기자의영화?영화!] ‘야생동물 참사’가 일깨운 다큐의 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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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 넓은 우주에 인간 말고도 고등생물이 살고 있으리란 게 아직 SF 단계라면, 한반도에 인간 아닌 야생동물들이 살고 있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입니다. 그 동물들이, 인간이 만든 도로를 엄청나게 이용(!)한다는 걸 다큐 ‘어느 날 그 길에서’(27일 개봉·감독 황윤)를 보며 새삼 깨달았습니다.

물론 동물들은 이게 도로인지 뭔지, 인간이 만든 표지를 알 리 없지요. 그러니 뱀·개구리처럼 작고 느린 동물도, 삵·고라니처럼 제법 발 빠른 동물도, 심지어는 몸이 가벼운 새들도 고속으로 달리는 자동차에 치여 처참한 죽음을 맞곤 합니다. ‘로드킬(road kill)’이라고 불리는 현상입니다. 이 다큐는 지리산을 둘러싼 세 도로를 무대로, 1년여에 걸쳐 로드킬에 대한 기초조사를 벌이는 이들을 동행하며 촬영했습니다. 카메라는 동물의 끔찍한 시체를 수시로 발견하는데, 그나마도 하루만 지나면 차 바퀴에 쓸려 형체 없이 흔적만 남아버립니다.

말 못하는 동물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볼 수는 없지요. 연구자는 몇몇 동물에 무선발신기를 달아 이동경로를 조사하는 작업을 병행합니다. 그렇게 포착한 무언의 답변은 이 너머에 물가가 있으니까, 짝을 지으려면 저 너머에 가야 하니까 등등. 한마디로 야생동물들은 타고난 대로 ‘살기 위해’ 도로 이편저편을 오가다 죽는 겁니다. 도로 중간에 동물이 넘을 수 없는 중앙분리대가 있거나, 어렵사리 넘어간 도로 저편에 높은 옹벽이라도 있으면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중에도 ‘팔팔이’라는 삵의 사연은 정말 기구하고도 절절합니다. 88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불명이 된 채 발견됐지요. 어렵사리 살려내고 적응훈련까지 거쳐 비교적 안전하다고 여긴 곳에 놓아줍니다. 놀랍게도, 발신기에 포착된 팔팔이의 행보는 산 넘고 물 건너 주인집에 돌아왔다는 명견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지리산의 험한 자락을 넘어 본래의 생활터전으로 향합니다. 사고를 당했던 장소 가까이로요. 그 후 팔팔이의 운명은, 참으로 가슴이 아프더군요.

이렇게 연구한 결과는 충격적입니다. 연구를 시작했던 사람조차 자신의 가설을 다시 점검해야 할 정도입니다. 드문드문 야생동물 이동통로를 만들거나, 운전자들을 위한 주의표지판을 세우는 일로 해결될 수준이 아니더군요. 이 다큐 역시 해답을 내놓지는 못합니다만, 어느 도로 개통 현장의 홍보영상물에 나오듯 ‘도로건설=행복으로 가는 길’만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야생동물에 대한 이 감독의 애정과 관심은 처음이 아닙니다. 함께 개봉하는 ‘작별’(2001년)은 이미 야마가타 영화제를 비롯,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았지요. 야생에서 살았어야 할 호랑이의 자손이 동물원에서 맞이하는 비극을 그렸습니다. 집에 데리고 사는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는 게 요즘 추세지요. 한반도라는 생태계를 함께 살아가는 또 다른 반려동물들에 대한 눈을 띄워주는 다큐입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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