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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형대한민국CEO] 내 머리가 브랜드 공장…지으면 대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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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이름이 물건의 절반은 결정하는 세상이다. 그래서 네이밍(제품 이름 짓기)의 중요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더불어 손혜원(53·사진) 사장의 몸값도 높아지고 있다. 크로스포인트란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그는 ‘네이밍의 귀재’라는 소리를 듣는다. 세상에 내놓은 이름마다 크게 히트를 쳤기 때문이다.

종가집김치·참나무통맑은소주·처음처럼·엑스캔버스·베스티벨리·힐스테이트 등 웬만한 사람이면 “아, 그 이름” 하며 잘 안다는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모두 그 업계에서 브랜드 인지도 수위를 다투는 이름들이다. 이게 다 손 사장 머리에서 나왔다. 이름을 짓는 디자이너, 브랜드 아이덴티티(BI) 디자이너라고도 한다. 그가 귀재 소리를 듣는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힐스테이트는 현대건설 아파트 브랜드명인데, 아파트가 지어지기도 전에 브랜드 인지도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그는 14년 동안 월급쟁이 그래픽디자이너 생활을 했다. 그러다 1990년 다니던 직장인 크로스포인트 대표의 부탁으로 덜컥 회사를 인수하고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그는 CEO란 타이틀을 불편하게 여긴다. “나는 CEO가 아니라 프로”라고 강변한다. 조직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창의성을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회사는 조직이라는 말로는 설명이 잘 안 된다. 남산에 있는 사무실엔 개와 고양이가 어슬렁거린다. 사무실에서 나선형 계단을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가정식 부엌에 떡도 있고, 밥도 있다. 생활공간과 사무실이 뒤섞여 있다. 직원은 고작 15명, 연간 매출액은 20억원 정도다. 그는 조직을 키울 생각이 없다고 했다. “직원들은 모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크리에이터이기 때문에 조직에 얽매여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자유로워야 한다”는 게 이유다. 회사에서 개와 고양이를 키우는 것도 밤늦게 일하는 직원들의 정서안정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창조’를 주업무로 하는 프로 경영인이 사는 법을 들어봤다.

◇짧고 깊게 생각하고 결단을 내린다=회사를 인수한 뒤 가장 재미있는 일이 무엇이었느냐고 자문해 봤다고 한다. 로고를 만들고 이름을 짓는 브랜딩 작업이라는 답이 나왔다. 이유를 캐보니 ‘내가 만든 디자인이 사람을 움직이는 걸 보는 게 즐겁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 돈줄이었던 브로슈어나 출판은 모두 접었다. ‘브랜드만 하나 잘 띄우면 사람들은 찾아올 것’이라는 계산도 했다. 청탁·영업·접대를 안 하고도 일을 하려면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오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길게 생각하고 결단을 못 내리는 일은 악이라고 생각한다.

◇고객도 차등을 둔다=친구·친지의 일은 공짜로 해준다. 빵집을 해도 친구에겐 빵을 공짜로 싸주는 게 정이다. 중소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 일은 아주 싸게 해준다. 이게 일을 통해 남들과 나누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경쟁이 치열하고, 시장에서 대박이 나는 일거리는 비싸게 받는다. 벌어서 회사 식구들도 먹고 살아야 하므로.

◇후진을 키운다=직원들의 아이디어가 조금이라도 좋으면 가차없이 내 것을 버린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언제나 한다. 2006년 뉴욕에 지사를 설립하면서 영어 능력보다는 일을 잘하는 직원을 지사장으로 보냈다. 지금은 교민을 주로 상대하지만 3년 후부터는 미국인 대상 비즈니스를 할 생각이다. 뉴욕지사장이 그때쯤이면 영어를 잘할 것 같아서다. 2년 전부터 중국 사업을 염두에 두고 직원을 교육시키고 있다. 내년엔 중국지사를 차릴 계획이다.

◇후배들의 역할 모델이 되겠다=지난해까지 홍익대 미대 교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나를 쫓아와라.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이기 때문에 열심히 쫓아와야 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에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그는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계속한다. 브랜드는 경쟁이 치열한 분야다. 선두그룹이 해야 할 일은 ‘치고 나가는 것’뿐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양선희 기자

손혜원 대표는…
·숙명여고 졸, 홍익대 응용미술과 및 대학원 졸
·현대양행·판디자인·디자인포커스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대외활동 : VIDAK 수석부회장, 서울디자인센터 이사, 농촌홍보포럼 이사 등
·저서 : 브랜드와 디자인의 힘(2006)

크로스 포인트는…
·1986년 설립
·1990년 손 대표가 인수
·주요 업무 : BI 및 CI 디자인, 브랜드컨설팅
·주요 작품 : 신원 ‘베스티벨리’, 대한펄프 ‘보솜이’, 제일제당 ‘식물나라’, 진로 ‘참나무통 맑은소주’ ‘참진이슬로’, 두산주류 ‘산’ ‘처음처럼’, 태평양 ‘이니스프리’ ‘라네즈 걸’, 대상 청정원 ‘순창고추장’, LG전자 ‘엑스캔버스’ ‘트롬’, 청풍 공기청정기 ‘청풍무구’,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우리투자증권 ‘옥토’, 롯데리아 ‘엔제리너스’, 유한킴벌리 ‘그린핑거’, 2007년 광주비엔날레, 경남 통영시 CI, 군인공제회 CI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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