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北 정책도 國益위주로 바뀌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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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이 베이징(北京)의 당국자회담에서 남한의 쌀을 수용한 것은 남북관계에서 남한이 주도권을 회복한 쾌거라 하겠다.
콸라룸푸르협상에서 북한이 사실상 「한국형경수로」와 「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받아들였고,이번 베이징협상에서 우리의 쌀을 받기로 한 것은 북한의 대남정책도 서서히나마 정치혁명에서 국가이익으로 전환하고 있는 징조다.우리는 이것을 슬기롭 게 활용해 남북대화를 통한 화해협력과정으로 정착시켜야 할 것이다.
북한이 한국으로부터 1차로 15만t의 쌀을 무상으로 받기로 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우선 당장 주민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식량이 절실하기 때문이다.중국은 올해부터 곡물을 수입해야 하므로 북한을 원조할 수 없다.오로지 일본과 한국이 쌀 을 제공할수밖에 없다.일본으로부터 더 많은 양의 쌀을 제공받기 위해서도한국과 협상을 타결해야만 했다.나아가 미국으로부터도 중유를 계속 지급받고 연락사무소를 설치해 관계개선을 가속화하기 위해서도한국과의 대화와 교류에 약간의 성의를 보여야 한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지난3월 베를린에서언명한 『무조건 식량을 지원하겠다』는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도이 쌀협상을 성공시켜야 했다.순수하게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북한주민들에게 쌀을 지원한다는 그 일 자체가 남북 관계개선과 통일을 위해 큰 의의를 갖는다.더구나 일본에 앞서 우리가 동족의 고통을 덜어주는 민족적인 과업에 성과를 거두는 것은 명분이 서는 일이다.동시에 미국과 일본이 북한을 경제적으로 포용해 질서있는 변화를 유도하는데 한국이 동참 하는 것은 공조를 유지하는데도 필요한 것이다.
긴 안목에서 북한은 남한과 대화.교류하지 않고 제네바핵합의를이행하거나 美日과 관계를 개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이번 쌀협상 타결은 북한이 이러한 인식을 갖고 개혁및 개방을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이제 핵동결을 중단하겠다는 위협일변도의 벼랑끝 외교만으로 북한이 얻을 것이 없다는 점을 북한당국은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단기적으로 북한은 쌀지원과 경제협력이 체제생존을 손상하지 않고 현지도층의 체면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행해지기를 바란다.이것은 아직도 대남(對南)통일전선 전략을 담당하고 있는 亞太평화위원회의 부위원장 전금철(全今哲)이 베이징회담에서 합의문발표를 민간차원으로 할 것을 고집한데서 잘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당국자간의 발표로 우리의 쌀을 받기로 했고,앞으로도 계속 논의하기로 한 것은 남북대화 및 교류가능성을 높이는 부분이다.
물론 이에 우리가 성급한 기대를 할 필요는 없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확고한 목적의식을 갖고 이번 쌀협상처럼 의미있는 지렛대로써 우리의 입장을 끝까지 고수한다면 그것이 관철될수 있다는 교훈이다.
바라건대 이번 쌀타결이 남북대화와 교류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되었으면 한다.혹자는 국내에도 못사는 사람들이 허다한데 왜 우리가 쌀을 주느냐고 할 것이다.때문에 정부는 왜 쌀제공을 결정했는지를 속시원하게 설명해야 할 것이다.이같이 성의있는 자세로비핵화,평화및 협력의 과정을 촉진한다면 국민적 합의를 결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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