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 측 “당내 현안 얘기했을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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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나라당 이재오(사진) 의원이 23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만났다. 그러나 이 대통령을 만나고 나온 이 의원은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당초 이 의원 측은 “이상득 국회부의장과 자신이 총선에 함께 불출마하는 것으로 공천 갈등을 수습하자는 건의를 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지만 청와대 회동 뒤 이 얘긴 쑥 들어갔다.

오히려 이 의원 측은 “당내 현안에 대해서만 얘기했을 뿐 불출마와 관련된 대화는 없었다”고 부인했다.

그래서 물음표는 꼬리를 잇는다.

우선 한나라당 공천자 55명이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의 공천 불출마를 촉구한 날 갑자기 청와대 회동이 이뤄진 대목이다. 이 의원은 그동안 당 내에서 이 부의장과 함께 당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는 지적을 줄곧 받아온 처지다.

게다가 이 부의장의 불출마를 요구한 55명 중 10여 명이 한나라당 내에서 ‘이재오계’로 분류되는 인사들인 점도 눈길을 끈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안팎에선 “이 의원이 미리 이 부의장에 대한 퇴진 압박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이 부의장과 동반 불출마하는 방안을 이 대통령과 논의하기 위해 청와대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실제로 이 의원의 한 측근은 “이 의원이 이 대통령에게 ‘이 부의장과 동반 퇴진하겠다. 이를 계기로 문제가 됐던 청와대와 내각 인사라인을 재정비하라’고 요구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 의원은 이 밖에 새 정부 출범 초 인선의 문제점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와 민심수습책을 발표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이 새 정부 내각과 청와대의 인사파동을 과녁 삼아 문제 제기를 시도한 것은 이 부의장에 대한 견제책이 아니겠느냐는 게 당내의 중론이다. 당 공천과 관련해선 두 사람 모두 개입한다는 의혹을 받아왔지만 조각(組閣)과 청와대 인선작업에는 이 부의장이 주로 관여했다는 소문이 정치권에 돌았기 때문이다. 장·차관과 청와대 수석비서관 인사의 실무 작업을 총괄한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은 이 부의장을 10년간 도왔던 보좌관 출신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 내에서는 “이 의원이 자신의 불출마를 고리로 ‘이명박 진영’ 내에서 자신과 헤게모니 다툼을 벌여온 이 부의장도 함께 2선으로 퇴진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부의장의 한 측근은 “최근 자신의 지역구에서 고전하고 있는 이 의원이 명예롭게 불출마를 하는 모양새로 이 부의장의 발목까지 잡기로 결심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최근 이 의원은 지역구(서울 은평을)에서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의 도전을 받고 고전해 왔다. 21일 중앙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 의원은 29.3%의 지지를 얻어 45.2%를 얻은 문 후보에 비해 15.9%포인트나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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