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첫 탄핵 정국] 투신…분신…국민은 망연자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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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9 수난구조대 대원들이 11일 한남대교 남단에서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의 시신을 수색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대우건설 전 사장 남상국씨가 자살을 결심한 데는 노무현 대통령의 11일 기자회견 내용이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盧대통령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南씨의 실명을 두번이나 거명하며 형 건평씨의 인사 개입 문제를 거침없이 설명한 것이다.

南씨는 투신 직전 대우건설 관계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내 이름이 전국적으로 생방송되면서 범죄자처럼 됐다. 어떻게 낯을 들고 다니겠느냐"고 말했다. 사고 직후 南씨 가족을 만났던 대우건설 직원은 "(가족들은) 盧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자살의 촉발제가 됐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건평씨에 대한 불구속 기소 사실이 11일 오전 신문에 보도된 데 이어 자신의 구체적인 인사 청탁 내용이 이날 대통령에 의해 다시 한번 공개되면서 극도의 수치심을 느낀 南씨가 자살을 결심했을 것이란 분석이 가능한 것이다.

또 南씨는 지난해 12월 사장직 연임에 실패한 데다 올해 초부터 대우건설 비자금 조성과 정치권 금품로비 사건으로 2개월 넘게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南씨가 盧대통령 기자회견 이전에 이미 자살을 결심했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수사 초기 모르쇠로 일관하던 南씨가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비자금 조성 및 사용내역을 근거로 정치권 로비 혐의를 추궁하자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정대철 의원과 서정우 변호사 등에게 불법 자금을 전달한 사실이 공개됐다. 南씨는 이후 심한 자책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南씨는 지난 6일 건평씨에게 인사 청탁했다는 사실과 관련해 다시 한번 조사를 받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당시 南씨는 모든 것을 체념한 상태에서 인사청탁 배경과 과정 및 금품 제공 사실 등을 털어놓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곤혹스러운 검찰=南씨의 자살 소식에 검찰은 곤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南씨를 조사했던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와 특수2부는 이날 오후 긴급회의를 열고 수사 당시 상황과 내용 등을 검토했다.

건평씨에 대한 인사 청탁 사건을 수사했던 김태희 특수1부장은 "지난 6일 南씨 조사 과정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서 "南씨가 대부분의 혐의 내용을 시인해 조사도 일찍 끝났다"고 말했다.

대우건설 비자금 조성 및 정치권 로비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채동욱 특수2부장은 "(南씨가) 수사에는 잘 협조했는데 정치인 로비 사실이 밝혀지면서 심리적 공황상태에 놓여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남상국씨는 누구=경기고와 서울대 공업교육학과를 나와 1974년 대우건설의 전신인 대우개발㈜에 입사해 99년 사장 자리에 올랐다. 대우그룹의 몰락으로 2000년 3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가자 그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보유자산 매각 등 자구 노력을 통해 우량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전진배.박원갑 기자<allonsy@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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