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크다고 자랑하지 마라, 작은 것이 강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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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크기의 과학
존 타일러 버너 지음,
김소정 옮김
이끌리오,
190쪽, 1만2000원

왜 모든 생명체는 크기가 다를까. 달리 말하면, 왜 코끼리는 그렇게 크고, 고양이는 저렇게 앙증맞을까. 일반적으로 같은 종의 생물은 크기가 엇비슷한 반면 다른 종과는 차이가 난다. 한번쯤 궁금해했을 내용이다.

미국 프린스턴대 생태 및 진화생물학 명예교수인 지은이는 이 책에서 바로 그 ‘크기’의 문제를 다룬다. 지은이는 크기는 진화의 부산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크기가 바로 ‘주체’라고 강조한다. 크기가 증가하면 형태와 구조가 변하고, 이에 따라 기능도 바뀐다. 이는 곧바로 진화상의 혁신으로 이어진다. 크기라는 하드웨어에 맞춰 모든 기능, 즉 소프트웨어가 변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도랑을 가로지른 막대와 큰 강을 건너는 다리가 같은 크기나 형태일 순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실제로 생물에서 크기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어찌나 많은지! 힘, 신체 표면적, 세포 분화 정도, 신체활동 속도, 자연 속에 존재하는 개체 수까지…. 크면 힘이 세고, 같은 면적에서 살 수 있는 개체수도 달라진다 .

쉽고 빠른 이해를 위해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예로 들어보자. 걸리버는 키 174㎝에 몸무게 68㎏. 소인국 사람들의 크기가 그 12분의 1이라고 했으니 키가 14.5㎝정도에 몸무게는 500g정도다. 생쥐만한 크기다. 그런데 사람을 이 크기로 축소한다면 다리가 도요새만큼 가늘어야 한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봤을 때 그렇게 허약한 다리로 500g의 몸무게를 지탱할 수는 없다는 게 지은이의 지적이다. 소인국 사람들은 키는 물론 신체 구조와 행동 등 여러 부분에서 일반인과 매우 달라야 과학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이다.

커다란 백조보다 작은 벌새가 훨씬 빠르게 날갯짓하듯, 소인국 사람들의 움직임은 걸리버보다 훨씬 빨랐을 것이다. 성대도 작을 테니 높고 날카로운 목소리를 빠른 속도로 냈을 것이고, 걸리버는 그들의 말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거인국 사람들은 걸리버보다 12배가 크다고 했다. 키가 21m, 몸무게는 12~13t 정도 나갔을 것이다. 커다란 코끼리보다 10배 정도 무겁다. 이 몸을 지탱하려면 다리와 골격은 사람이 아닌, 코끼리와 비슷하게 굵어야 한다. 성대도 아주 컸을 테니 목소리가 무척이나 굵고 무거웠을 것이다.

생물계에서 크다는 것은 상대를 주눅들게 하는 무기다. 그러나 세균도, 코끼리도, 인류도 모두 저마다의 크기가 있는 법이다. 모든 생명체들은 크기가 결정하는 보편적인 규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요컨대, 사람은 사람의 크기를 갖췄기 때문에 사람의 구조와 행태, 그리고 생리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게 지은이의 설명이다. 이는 모든 생명체에 다 적용된다.

사실, 생물계에서 크다는 것은 상대를 주눅 들게 하는 무기다. 하지만, 크다고 능사는 아니다. 육상동물로는 가장 컸던 브라키오 사우루스 같은 거대한 공룡, 하늘을 나는 초대형 생명체이었던 익룡은 이젠 화석으로만 볼 수 있다. 날지 못하는 새 가운데 가장 컸던 모아, 에피오르니스도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가장 큰 도마뱀도 멸종돼 화석으로만 남아있다.

반면 가장 작은 생물인 세균은 아직도 전 세계 곳곳에 엄청난 수가 살고 있다. 거대 생명체는 사라졌지만, 가장 작은 생명체는 성공적으로 살아 남았다.

현재 가장 큰 동물로 꼽히는 흰긴수염고래는 물에 산다. 몸무게를 지탱하는 커다란 사지도 필요 없고, 중력의 영향도 크게 받지 않는다. 육상에서는 어림도 없다. 이것이 생존의 현실이다. 이렇게 따져보니, 자연은 평등하지 않은가. 원제 『Why Size Matters』(2006).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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