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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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5년을 기다려주지.15년 안에 당신이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면 저 남자를 해치우는 것을 그만두고 그렇지 못하다면 계시에따르겠어.』 『물론 그 시간도 당신대로의 시간이겠죠?』 『그럼! 난 이미 절대적인 시간의 개념을 초월한지 오래니까….』 남자가 묘하게 웃음지으며 대답했다.채영이 되받아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하죠.어차피 인생에서 완전한 행복이란 없죠.당신의살해위협이 항상 존재한다는 것은 내 삶의 긴장을 유지하는데 소중한 거름이에요.』 『당신은 안 죽여.』 채영이 옷을 집어들고일어나며 민우에게 말했다.
『우리 가요.』 채영은 테이블을 빠져나오며 남자에게 통고하듯이 말했다.
『저를 죽이지 않고는 이 이를 죽일 수 없어요.당신도 잘 아시겠죠,제가 당신에게 무엇을 배웠는지… 저도 이제는 당신만큼 느낄 수 있어요.』 채영은 민우를 팔짱 끼고 끌었다.민우는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채영이 이끄는대로 따라갔다.뒤에서 남자의 맑게 웃는 소리가 방울소리처럼 울려왔다.채영은 견디기 힘든 듯귀를 틀어막고는 튀어나갔다.민우는 영문은 잘 모르겠으나 그냥 이대 로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그래서 다시 남자가 있는 쪽으로가 건너편에 앉았다.남자는 의외라는 듯 민우를 쳐다보았다.
『우리 술이나 한잔 하죠.』 『그럽시다.』 남자가 웨이터를 불러 밀러를 세병 시켰다.민우는 한 박스를 시켰다.밀러는 그냥손으로 딸 수 있어 재미있는 맥주다.그래서 돈을 벌었다나….언젠가 소주를 병따개로 따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는 얘기를들은 적이 있다.과거 정권이 병따개 업자들과 담합이 돼서 그랬다나….남자가 재미있게 민우를 바라봤다.
『환자들과 면담할 때마다 가끔씩 이런 생각이 들죠.맨숭맨숭 앉아서 떠드느니 차라리 술이라도 한잔 하면서 면담하면 어떨까 하고 말이오.』 남자가 밀러를 손으로 까더니 민우와 부딪쳤다.
『난 어떤 환자 같소.』 『알 수 없죠.단지 상태가 좀 심하다는 것 밖에는….』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그는 테이블 위로 밀러 한 박스를 모두 꺼내 늘어놓더니 하나씩 따기 시작했다.병마개를 모두 딴 후 그는 한 병씩 들이켜기 시작했다.
민우가 놀라 바라보는 사이에 테이블 위의 맥주병들은 빠른 속도로 비워졌다.
민우도 뒤질세라 병을 들어 들이켰다.멍하니 있다가는 한 병도못마실 것같았다.워낙 그가 빨리 들이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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