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사형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근 잇따른 강력사건으로 ‘사형제(死刑制) 폐지는 시기상조’라는 주장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전 프로야구 선수 출신의 이호성씨의 4모녀 살해사건이 일어나자 네티즌들은 사형제도를 존속시켜 범죄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인스닷컴 토론방의 이만수씨는 “무관심과 무질서가 존재하는 우리 현실에 사형제 폐지는 시기 상조”라면서 강력히 처벌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사형제 존속 주장 대열에 합류했다. 그는 21일 “21명의 사람을 죽인 사람이 아직도 살아있다. 사형선고는 받았는데 집행이 안된다. 이는 잘못됐다”고 말했다. 분명히 사형집행을 지지하는 발언이었다.

여론조사에서도 사형제 찬성론이 우세하다. SBS 라디오‘김어준의 뉴스앤조이’가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사형제를 찬성하는 응답자는 57.0%였다. 사형제 폐지를 주장한 의견은 22.2%로 나타났다.

실제로 21일 군검찰은 지난해 12월 인천 강화에서 초병을 살해하고 무기를 탈취한 조모(35)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지난해 12월 30일 우리나라는 국제 민간 인권운동단체인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에 의해 사실상 사형 폐지 국가로 분류됐다. 지난 1997년 12월 30일 이후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사형이 실제로 집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완전한 사형제 폐지를 주장했던 사람들의 현재 입장은 어떠할까.

천주교 사형폐지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형태 변호사는 사형수들이 머무르고 있는 구치소 분위기를 전했다. 요즘 같은 강력범죄가 들끓을수록 사형수들이 수감되어 있는 구치소엔 싸늘한 정적이 흐른다는 것이다. 사형수들은 행여나 사회적 압력으로 인해서 사형 집행이 앞당겨질까봐 답답하고 안쓰러워하고 있다고 한다.

김형태 변호사는 “이번 사건을 저지른 사람은 솔직히 감정적으로 나쁜 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이번 사건은 극악무도한 사건이고, 사람이라고 볼 수 없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중형을 내려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국가가 나서서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고 전했다. “국가는 감정적인 존재가 아니라 이성적인 존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형제 폐지 운동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김 변호사는 미국의 사례를 들면서 사형제 폐지 운동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미국도 사형수에 의해 살해된 희생자 가족이 사형제 폐지 운동에 동참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 가족도 주변의 미움을 받고 사이가 안 좋게 뒤틀리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유영철에게 세 명의 가족을 잃은 고정원(66)씨도 사형제 폐지 운동에 동참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실제 인물인 조성애 수녀도 이번 사건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조성애 수녀는 “가슴이 아프다”면서 “범죄가 늘어나고 인간이 인간을 싫어하는 현상에 대해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그는 또 “생명을 빼앗는 행위를 똑같이 생명을 빼앗는 행위로 되갚아서는 안 된다”며 “똑같이 잔인하게 사람을 대하면 더 나아질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구치소 안에는 아직 원한에 차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형을 집행하면 그런 사람들에게 더 원한을 주는 일”이라고 밝혔다.

18일 사형수들이 수감된 구치소에 다녀온 조성애 수녀는“사형수들이 이번 사건을 다 알고 있고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있다”며 “죄송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더라”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김민상 기자 steph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