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윤 ‘신들의 왕’ 맡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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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37·한국이름 윤태현·사진)이 9월 포르투갈 리스본의 산 카를로 오페라 극장에서 바그너 ‘니벨룽겐의 반지’ 중 ‘보탄’ 역으로 데뷔한다. 유럽의 주요 극장에 서는 최초의 동양인 ‘보탄’이다. 산 카를로 극장은 1년에 5개 정도의 작품만 엄선해 올릴 정도로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보탄’은 신들의 전쟁과 인간의 운명을 장대하게 그린 ‘니벨룽겐의 반지’에서 ‘신들의 왕’ 역할을 하는 가장 중심적인 배역이다. 저음을 담당하는 남자 가수들이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역이기도 하다. 4년 연속 독일 바이로이트 음악축제에 초청되면서 주목을 받았던 사무엘 윤은 “나의 마지막 목표는 ‘보탄’”이라고 말해왔다.

그가 진출한 바이로이트는 성악가들에게 ‘꿈의 무대’다.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은 1875년 바이에른 왕 루트비치 2세의 후원으로 세운 바그너 음악극 전용 극장으로 바그너의 후손들이 대를 잇고 있다.

사무엘 윤은 독일의 자존심으로 여겨지는 지휘자 크리스티안 틸레만에게 발탁돼 2003년 이 ‘메카’에 입성했다. 이 무대에서 그가 주로 맡았던 역은 ‘니벨룽겐의 반지’ 1부 ‘라인의 황금’ 중 번개의 신 ‘돈노’ 또는 4부 ‘신들의 황혼’ 중 ‘군터’ 등이었다. ‘보탄’은 동양인에게 허락되지 않는 마지막 영역이었다. 사무엘 윤은 1999년부터 독일 쾰른 극장의 전속 가수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지만 ‘보탄’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리스본 극장도 당초 영국인 성악가를 ‘보탄’에 캐스팅했다. 그가 스케줄이 맞지 않아 3부를 부를 수 없게 되면서 사무엘 윤에게 기회가 왔다. 프랑스·영국·이탈리아 등에서 활동하는 오페라 연출가 그라함 빅과 함께하는 무대다. 사무엘 윤의 별명은 ‘대포 바리톤’이다. 풍부한 성량과 호흡으로 오랜 시간 노래해도 흔들림이 없다. 서울대 음대, 이탈리아 베르디 음악원을 졸업하고 독일로 활동무대를 옮기면서 바그너 전문 가수로 자리매김했다.

국내에서 그의 소리를 처음 들을 수 있었던 것은 2005년 성남아트센터 개관 기념 공연.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에 출연한 그는 ‘메피스토펠레’ 역을 맡아 웅장한 소리와 강한 캐릭터를 선보였다. 그가 유럽에서 첫 한국인 ‘보탄’이 될 수 있었던 것도 타고난 ‘튼튼한 성대’ 덕분이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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