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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의 셰르파’ 자임한 히말라야 사나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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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강식 교사가 음악시간에 한 학생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있다. [사진=송봉근 기자]

“아빠고믄(곰은) 뚜뚜해(뚱뚱해), 엄마고믄 날씨해(날씬해)∼”

20일 경남 통영시 도산면 경남도교육청 산하 잠포 특수학교 음악실. 바닷물에 반사된 햇빛으로 온통 환한 교실 안에서 장애 아동 여섯 명이 반주기 소리에 맞춰 동요 ‘곰 세마리’를 부르고 있었다. 교사는 아이들의 발음이 어눌해지자 손뼉을 치며 “좀 더 또박또박하게”라고 외쳤다. 그의 양손을 보니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다른 손가락이 없이 뭉툭했다.

이 교사는 2005년 초 히말라야 등정 도중 크레바스(빙하 속의 깊은 균열)에 빠졌다가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왔던 산악인 최강식(28)씨다. 동상으로 손가락 9개와 발가락 10개를 잘라내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은 최씨는 장애인을 돌보는 특수학교 교사가 됐다. 지난달 경상대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한 그는 3월부터 이 학교 기간제 교사로 근무중이다.

그는 전교생 46명인 이 학교에서 음악·체육 과목을 맡고 있다. 수업 외에 몸무게 100㎏ 나가는 16살짜리 학생 두 명의 보호와 쉬는 시간에 함부로 돌아다니는 학생들을 따라다니며 다치지 않도록 보살피는 것도 그의 몫이다.

점심시간이 되자 그는 학생 10여 명을 인솔해 식당으로 갔다. 다른 길로 가려는 학생들을 밀고 당기고 하는 크고 작은 소동이 10여 분쯤 벌어진 뒤에야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최씨가 “자, 이제 밥 먹자”라고 말해도 일부 학생은 밥은 먹지 않고 그의 말만 따라서 반복했다. 그는 그런 학생들에게는 밥을 직접 떠먹인다. 식당 곳곳에서도 교사들이 각각 몇 명의 학생을 맡아 밥을 먹이는 모습이 보였다.

“이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히말라야 고봉만 생각하고 살 때는 몰랐던 행복감을 느낍니다. 동상으로 얼어버린 손가락과 발가락을 잘라낼 때는 절망했지만, 장애가 심한 학생들을 돌보면서 ‘나의 불편은 아무것도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최씨의 손을 처음 본 학생들이 자주 묻는다.

“선생님. 손이 이상해.”

“으-응. 사람마다 몸은 서로 다른 거야. 키가 크고 작듯이 손가락 크기도 달라. 만져봐. 움직이지.”

손가락이 없는 그의 뭉툭한 손을 만져본 학생들은 까르르 웃는다고 한다.

“장애 학생들의 눈빛이 햇빛에 반사된 히말라야 눈처럼 너무 아름답습니다. 학생들의 눈을 보면서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착각에 빠집니다.”

그를 한 달 가까이 지켜 본 최순옥 교감은 “성격이 밝고 희생과 봉사정신이 배여 있는 산악인이어서 근무를 아주 잘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기간제 교사 근무가 끝나면 대학원에 진학해 특수교육을 전공할 계획이다.

최씨가 사고를 당한 것은 2005년 1월17일 히말라야 촐라체 봉(해발 6440m) 정상 부근이었다. 경남산악연맹 원정대 소속으로 정상을 정복한 뒤 하산하던 그는 깊이 25m의 거대한 크레바스에 빠졌다. 그와 서로 로프를 연결했던 선배 박정헌(38)씨가 피켈을 얼음에 박으며 제동을 걸었으나 갈비뼈가 부러졌다. 자일을 끊지 않으면 두 사람 모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둘은 서로 격려하며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3시간 만에 크레바스에서 빠져나왔다. 그 뒤 강추위 속에서 닷새 동안 비박(텐트 없이 야외에서 자는 것)을 하며 버틴 끝에 야크 몰이꾼에게 발견돼 구조됐다. 박씨도 동상으로 10개의 발가락과 8개의 손가락을 잘라내야 했다.

두 사람의 사연은 작가 박범신(62)씨가 최근 펴낸 소설 『촐라체』의 소재가 됐다. 최씨는 지난해 경상대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활동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손가락을 잃었다고 도전정신을 접을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런 말을 하는 그의 눈빛이 아주 형형했다.

글=통영=김상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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