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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대학 기여入學 바람직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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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교육개혁 발표에 뒤이어 기여입학제 실시 여부가 새로운 관심사로 떠올랐다.대학의 질과 경쟁력을 요구하는 시대에 대학재정을 살리는 길은 무엇인가.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현실론과 교육을 황폐화시키고 마지막 남은 사회의 공신력을 해친다는 반 대론이 여전히 맞서고 있다.이 문제를 쟁점화해 사학(私學)의 살 길을 모색한다. [편집자註] 대학교육 적격자를 선발하기 위해 각 대학이 학생선발의 자율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사립대학에 학생선발의 자율권을 부여하는 교육개혁안이 발표되자 이제 일부 사립대학에서는 또 다시 대학기여입학제를 주장하고 나섰다.
대학입시부정 사건이 일어나기만 하면 정부에서는 기여입학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으며,사학재정의 문제가 논의되기만 하면 일부 사학에서는 기여입학제가 시급히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마치 기여입학제가 없어서 대학입시부정 사건 이 일어나고 사립대학이 재정난에 직면하게 된 것처럼 말한다.이는 진단과 처방이 잘못된 것이다.기여입학제는 분명히 입시부정에 대한 올바른처방이 아니고 사립대학의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한 정도(正道)가아니다. 그럴듯하게 포장한 수식어를 베껴내면 기여입학제란 기부금입학제를 의미하는 것이다.즉 입학이라는 상품을 공개적으로 매매하는 입학 공개입찰제다.입찰가격이 높을수록 대학의 수입은 늘어나게 될 것이다.기부금을 공개적으로 관리하면 대학의 교 육여건도 어느 정도 개선될 수 있을 것이며,빈곤한 학생들에게 장학금 혜택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목적이 정의롭다고 해서 부당한 수단과 방법이 정당화돼서는 안된다.
사학의 재정난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하자고 하는 기여입학제는 사학재정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겠지만 당위성.합법성.윤리성의 측면에서 볼 때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기여입학제는 교육의 기회균등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에 저촉된다.헌법 31조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여기서의 능력은 자신의 능력이지 부모나 타인의 능력이 아니다.또 능력이란 지적 혹은 학습능력을 의미하는 것이지 권력이나 재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둘째,기여입학제가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부정입학이 자행되고 있는데 이 제도가 공인되고 합법화된다면 학생선발에서 온갖 부조리가 나타나게 되며,사회의 가치체계는 완전히 와해되고 말 것이다.이 제도는 사립대학 학생선발에만 국한되지 않고 임용.승진 등 모든 인사제도에 영향을 미치게 되며,결과적으로 황금만능주의 혹은 배금(拜金)사상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셋째,대학기여입학제는 대학에 대한 불신으로 끝나지 않고 모든 교육기관으로 파급될 것이다.고교내신성적도 기여금에 따라 결정되고 국.중학교의 성적도 돈봉투의 두께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는가.
넷째,이 제도는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현상을 가속화시켜 사회계층과 격차를 넓히고 갈등을 심화시키게 될 것이다.대학의 합격과 불합격이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결정될 때 불합격한 학생은 자신의 능력을 탓하기 전에 부모를 원 망하는 일이벌어지게 된다.
가난한 것이 분명히 자랑거리는 될 수 없다.그렇다고 해서 가난이 수치가 되고 부모의 권위를 추락시키도록 해서는 안된다.이제도는 유전합격(有錢合格),무전탈락(無錢脫落)이라는 또 하나의유행어를 만들어 조용한 대학캠퍼스에 학생소요의 불씨로 자라게 될 것이다.

<尹正一 서울대교수.교육학> 우리사회에서 소위 기여입학제도라면 누구나 말하기도 싫어하는 피곤한 문제며 이른바 국민정서상 거부감을 주는 문제다.그러나 국제화시대에 외국대학의 국내 진출과 대학의 자율화.다양화에 따라 새로운 상황이 도래했다.
첫째,대학의 자율화.다양화에 따라 학생정원이 없어지고 대학은수용능력을 고려해 다양한 기준을 설정,자유롭게 학생을 선발하게된다.그러므로 성적뿐 아니라 사회봉사.신체장애.농어촌출신.효행등 이미 학교측이 내놓은 기준만해도 매우 다 양하다.그렇다면 학교에 대한 기여라는 기준을 추가하는 것을 법으로 막을 방법이없다. 둘째,국제화시대는 세계가 하나의 생활권으로 변해가기 때문에 제도와 법이 통일되고 보편화한다.가령 서울에 하버드나 컬럼비아 대학의 분교가 생기고 이러한 대학에서 기여입학제도를 실시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국민정서에 안맞는다고 처벌하겠 는가.
셋째,국제경쟁에서 우리 대학이 외국의 유수대학과 경쟁해 살아남을 방법이 무엇인지 냉철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대규모 대학1개의 현재 예산이 1천억원 정도인데 교직원 인건비를 제외하고나면 남는 것이 없다.학생수를 늘리면 되지 않나 생각할지 모르나 교수확보율 때문에 또다시 교수를 늘려야 한다.결국 등록금을올려야 하고 그렇다면 결국 가난한 사람은 정말 대학에 못 가게될 것이다.미국의 대학등록금이 연간 1천만원이 넘는 것을 생각하면된다.
넷째,대학의 자생력을 키워주어야 한다.정부의 지원예산을 대폭늘리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나 그러한 자원을 조달하는 것이현실적으로 어려울 뿐 아니라 남이 지원해주는 돈으로 발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다섯째,기업인 2세들의 교육과 자금의 해외유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상당수의 기업인 2세들이 외국의 유수대학에 엄청난기여를 하고 다니고 있는 것은 여러가지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우선 우리 대학은 빈곤한데 많은 자금이 오히 려 외국의 유수대학으로 흘러가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그 다음 자녀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장래 기업을 경영할 기업인 2세 교육을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말할 필요가 없다.
여섯째,우리 의식도 전환돼야 한다.가령 투자에 대한 무조건 부정적인 편견이나 기여입학이 돈주고 입학을 산다고 생각하는 시각,사회 전체의 발전을 생각하기 보다 개인의 감정을 앞세우는 일 등은 국제경쟁사회에서는 매우 장애가 된다.일부 재벌이 부(富)를 축적하는 과정에 어두운 점이 있으면 그 점만을 비판하면되지 모든 기업인을 매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또한 기여입학에도 수학능력 등 여러가지 전제조건이 있으며 돈만 낸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러한 기여입학제도를 실시하기 위해 여러가지 제도적 보완이 전제돼야 한다.우선 학생의 수학능력이 있어야 하며,자금의용도나 운영의 공정성과 합리성,사후 공정한 감사등이 선행돼야 한다.일반국민의 편견이나 거부감이 크다면 합리적 인 설득을 함과 동시에 그 우려하는 폐단을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돼야할 것이다.

<柳炳華 고려대교수.국제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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