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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머니게임>3.敗者의 세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美깁슨 그리팅스는 생일.크리스마스용 카드를 만드는 중견 회사.91년말 영업이 부진하자 아르바이트로 뱅커스 트러스트 은행과스와프계약을 했다.스와프는 금리나 통화가 다른 두 채권을 맞바꾸는 파생상품의 하나.흔히 금리가 올라갈 것 같 으면 변동금리를 고정금리로 바꾼다.
당시 깁슨은 금리가 내려가는 쪽으로 배팅했다.금리가 조금만 올라도 빌린 돈에 대한 거액의 원금손실까지 갚아야 하는 「지옥의 거래」였다.
첫 거래에서 26만달러를 번 깁슨은 재미를 붙여 2년여동안 모두 29번의 줄거래를 했다.그러나 94년 금리가 오르자 상황은 급반전했다.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9월에는 2천만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시기 대표적인 다국적 기업 프록터 앤드 갬블은 파생상품에서 1억5천만달러를 잃었다.7월에는 페이퍼 보드가 1천1백만달러,8월에는 에어 프로덕트가 1억2천만달러 손실을 입었다고 각각 발표했다.이 정도에서 디리버티브 악몽은 막을 내릴 것으로보였다. 그러나 올해 2월 런던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영국 최고(最古)의 베어링은행이 넘어졌다.
92년3월 결혼한지 한달된 25세 닉 리슨은 부인과 함께 싱가포르 샹기공항에 내렸다.1년도 안돼 그는 싱가포르 금융선물거래소(사이멕스)에서 겁없는 트레이더로 소문 났다.
초기에는 오사카와 싱가포르간의 차익거래가 전부였으나 부임 2년만에 베어링 그룹전체 이익의 5분의1을 벌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과시했다.주말엔 최고급 스포츠카 포르셰가 그를 요트가 있는 곳으로 실어날랐다.
거래규모가 커지자 94년8월 본사 감사팀 조사가 있었으나 위험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사실 리슨은 1월에 이미 「스트래들」을 시작했다(이것은 주가지수가 현재 수준 근처에서 작은 폭으로 움직이면 돈을 벌지만 아래위 어느 쪽으로든 범위를 벗어나면 엄청난 손실이 생기는 계약이다).이 거래를 숨기기 위해 리슨은 가명계좌 「88888」을 사용했다.처음에는 성공한 듯 보였다.日기관투자가들이 닛케이지수가 1만9천~2만1천 사이에서 오르내리도록 떠받쳤기 때문.
이에 「간이 커진」리슨은 올해들어 진짜 배팅을 시작했다.주가가오를 것으로 예상,닛케이 선물을 마 구 사들였다.
불행은 예고가 없는 법.1월17일 효고(兵庫)縣 대지진이 났다.23일 들어 닛케이 주가가 1천 포인트나 빠지자 리슨은 또사들였다.「판돈」을 올린 「막판 뒤집기」였다.하지만 주가는 폭락을 거듭했다.실패였다.베어링의 큰 별이 땅에 떨어지고 있었다. 1월27일 사이멕스로부터 과대한 포지션을 염려하는 내용의 편지를 받은 베어링 본사가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결과가 상층부로 보고되자 다음날 베어링 회장은 이사회를 소집했다.문제의 「88888」에 누적된 손실은 8억6천만파운드(13억달러).
참석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누군가가 흐느끼기도 했다.하지만 마지막을 감지한 리슨이 아내와 함께 싱가포르 공항을 총총히뜬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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