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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본 듯… 추억 속의 ‘데자뷰’

중앙일보

입력

너도 나도 새것·트렌디한 것을 쫓는 요즘, 세월이 머물러있는 부암동의 모습은 그래서 신선하고 정겹다. 지나간 것들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 산길을 따라 제멋대로 들어서있는 집과 골목을 감상하는 것이 바로 부암동 산책의 묘미. 이를 위해 자가용은 하루쯤 쉬게 놔두자.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7016, 1020, 0212, 7022 버스를 타고 부암동사무소에서 내리면 나들이가 시작된다

부암동 명소가 모인 곳, 창의문 앞 삼거리


 동사무소를 마주보고 왼쪽으로 뻗은 언덕길을 오른다. 2차선 도로 좌우로 서너 명 들어가면 꽉 차버릴 듯한 아담한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노란집’으로 불리는 유기농카페는 도시미관을 해치고 싶지 않은 주인장의 배려 덕에 간판조차 없다. 이 정도는 약과다.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은 무인갤러리. 주인의 따가운 눈총을 받지 않고 편안히 예술에 대한 안목을 높일 수 있다. 무한경쟁의 일상을 담은 최은식 사진전 ‘배틀로열’이 24일까지 전시된다. 무인갤러리 앞쪽은 창의문 삼거리. 부암동의 몇 안되는 명소가 모여있다. 원산지별로 원두가 담겨있는 포대와 진한 커피향이 실내를 감싸는 ‘클럽 에스프레소’는 커피 매니어뿐만 아니라 북악산을 찾는 등산객들도 즐겨 쉬어가는 곳. 매장에서 직접 만드는 스콘 역시 커피 못지않게 별미다.
 카페 뒤 터널도 꼭 들러보자. 4소문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창의문(자하문)망루에서 서울 시내를 시원하게 내려다볼 수 있다. 터널을 돌아 나와 몇 발짝 옮기면 오른쪽으로 손만두라는 간판이 보인다. 점심때쯤 이곳에 도착했다면 만둣국 한 그릇으로 속을 든든히 채우는 것도 좋다. ‘자하손만두’의 만둣국은 간장 이외의 조미료는 전혀 넣지 않아 맛이 매우 담백하다. 후식으로 나오는 수정과 역시 별미로 이 맛을 못 잊어 이곳을 찾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만둣국집 맞은 편의 ‘cheers’는 치킨으로 유명한 곳. 구룡포 과메기 등 술안주도 더러 있지만 닭튀김이야 말로 이곳을 ‘부암동 대표 맥주집’으로 만든 효자메뉴다.

서울성곽 바라보며 따뜻한 차 한잔


 손만두집을 지나 몇 발짝 걸으면 ‘동양방앗간’을 사이에 두고 왼쪽으로는 환기미술관 가는 길, 오른쪽은 북악산 산책로를 향하는 길이다. ‘환기미술관’은 추상미술가 김환기가 작고한 이듬해인 1992년 그의 아내가 세웠다. 유작들을 본관에 상설전시하며 3층에서는 인왕산을 감상할 수 있다. 현재 ‘환기재단 작가전-문미애를 추억하다’가 21일부터 6월 15일까지 전시된다. 미술관 구경을 마치고 왔던 길을 돌아 나와 이번엔 방앗간 오른쪽 길로 올라가보자. 산길을 오르기 전, 출출해질 것을 대비해 군것질거리 떡과 그 옆 슈퍼마켓에서 물 한잔 사 들고 가는 것도 좋다. 오후 3시 쯤이면 동날 정도로 인기있는 ‘동양방앗간’의 떡은 향료냐 색소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 고소한 맛이 잘 살아있다. 왕송편과 인절미·콩버무리가 특히 인기다.
능금나무길, 혹은 북악산 산책로 가는 길 이라는 푯말을 따라 잠시 걸어보자. 언덕을 올라가다 왼편을 바라보면 서울성곽이 눈에 들어온다. 맑은 날은 하얀 옛 성터를 볼 수 있으며 밤에는 성곽을 따라 불이 들어온다.
 산행길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무렵 언덕 꼭대기에 ‘산모퉁이’라는 갤러리 겸 카페가 나온다. 노란색 폭스바겐 자동차가 손님을 맞이하는 이곳은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이선균의 집으로도 유명하다. 핫초코가 특히 맛있는 이곳은 낮보다 밤이 아름답다. 야외테라스에서 차 한잔 마시며 바라보는 경치는 교외에서나 맛볼 수 있는 운치가 있다.

도심 속 비밀의 숲, 백사실 계곡


 산모퉁이 카페를 지나 북악산 산책로 푯말을 따라 3분정도 걷는다. 군부대 입구 앞에 다다르면 두갈래길이 나온다. 오른쪽은 북악산 산책로로 이어지는 길. 여기서 왼쪽으로 뻗은 언덕을 따라 내려가보자. ‘백사실 계곡’으로 향하는 이 숲길에는 그야말로 시골마을의 풍경이 펼쳐진다. 이곳을 찾는 이들이 하나같이 외치는 말은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흙때묻은 누렁이가 연탄재더미 사이도 뛰어다니는 모습과 낙엽 태우는 냄새가 정겨운 무공해마을이다. 여름이면 도룡뇽이 살 정도로 맑은 물이 계곡을 따라 흐르며 숲과 함께 장관을 이룬다.
 계곡옆 ‘뒷골’은 아직도 농사를 짓는 마을이다. 밭터며 비닐 하우스가 계곡 옆으로 쭉 펼쳐진다. 이곳에서 기른 무공해 채소는 효자동 시장에 내다 팔리는데 상당히 비싼 값에 팔릴 정도로 큰 인기다. 이 부근부터는 부암동이 아닌 신영동이다. 부암동이 산길을 따라 마을이 들어섰다면 신영동은 백사실 계곡부터 세검정까지 흐르는 물길을 따라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있다. 좁은 골목에서 시작해 어느덧 산을 넘고 물을 건너다 보면 부암동 일대 나들이가 끝난다.
 

프리미엄 심준희 기자
사진= 프리미엄 황정옥 기자 ok7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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