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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雪亂' 대처의 허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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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 4, 5일 서해에서 발달한 저기압이 중부지방에 눈과 비를 발생시킨 것은 서해가 우리 반도에 수자원 공급을 얼마나 잘 하는가의 본보기였다. 특히 충남.북과 경북에 대설을 발생시켰으며 대전 49㎝, 문경 46.5㎝, 보은 40㎝, 청주 32㎝의 대설이 불과 12시간 만에 내려 막대한 피해를 주었고, 이 과정에서 재해대처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대설 주의보.경보는 우리 사회의 실정에 맞도록 개선돼야 한다. 대설경보는 대도시의 경우 눈이 20㎝ 예상될 때 발령하고, 일반지역은 30㎝ 이상 예상될 때 발령된다. 이는 선진국 수준인 대도시 15㎝, 일반지역 20㎝로 하향 조정돼야 한다. 현재의 대설경보는 차량 400만대일 때 설정된 것이다. 차량이 1400만대로 증가해 각종 도로상황이 달라지고 농업 등 산업구조가 다양하게 변화됐기 때문에 그에 맞춰 경보기준도 현실적으로 조정.개선돼야 한다. 눈으로 인한 피해도 10년 전과 비교해 몇배~ 몇십배 증가했다.

5일 오전 11시쯤 청원에 20㎝ 이상 대설이 내렸으나 많은 차량이 운행을 계속함으로써 사고가 나고 오가지도 못하며 길에 멈추게 되었다. 25㎝가 되면 눈이 범퍼에 밀리고 차 밑에 닿아 헛바퀴가 돌며 승용차들은 그냥 정체된다. 눈이 20㎝ 이상 쌓이면 농사용 온실과 축사들은 무게를 못 이겨 무너지기 시작한다. 도시는 다소 따뜻해 강설량이 적지만 교외와 시골지역은 기온이 낮아 강설량이 더욱 많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청주시내 기상대의 강설량이 32㎝를 기록했을 때 교외 시골인 강내면의 배경환경관측소에는 무려 43㎝나 기록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바람이 잔잔한 풍하측 어떤 곳에는 50~60㎝ 이상이나 눈이 쌓였던 것도 참조해야 한다. 적설량 43㎝를 전체 강수량으로 환산하면 62㎜ 정도다. 이는 1㎡를 약 62㎏의 무게가 짓누르고 있는 것과 같으며, 7×25m의 시설 온실 위에는 약 11t의 눈과 물이 누르고 있어 무너지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이다.

축산농가들은 깔려 죽은 소를 꺼내 도축장에 보내려고 했으나 장비와 들것이 없고 트럭의 진입이 불가능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운전자들이 도로에서 밤을 지새우는 것을 보면 매우 안타까울 뿐이다. 한달에 한번 실시하는 민방위 훈련과 그 결과가 이 정도인가.

5일과 6일 관련 부서에 연락해 보니 비닐하우스 몇 개, 축사 몇 동이 파괴되었는가 등의 통계를 내 중앙에 보고하는 것이 고작인 듯했다. 면이나 군청의 제설작업차를 기다릴 필요 없이, 농촌의 트랙터를 동원해 제설 날(snow-blade)을 달아 마을과 면 도로 구석구석의 제설을 6일까지 완료했어야 했다.

농민들의 장비동원 등을 전화로 제안하니 듣는 둥 마는 둥 아랑곳하지 않았다. "예산이 없고 감사에 걸린다"는 상투적인 답변을 했다. 공무원은 감사 대비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가 제1의 임무인 것이다. 9일에야 전경을 실은 버스 두 대가 보였다. 6일과 8일에는 평소 소음공해로 시달리던 지역에 헬기 2, 3대가 날아와 재난 구조는커녕 구경하듯이 빙빙 돌며 수심 찬 피해주민들을 매우 성가시게 했다.

대설이 예상되거나 발생하면 각급 학교는 물론 직장도 임시로 문을 닫는 결정을 내려 인적.물적 피해를 줄이는 선진국형 관리.운영의 묘를 살려야 한다. 대설이 20㎝ 이상 발생하면 차바퀴가 구르지 않으므로 가능한 한 차량을 길 옆에 주차하고 그곳을 나와 인근 가옥이나 학교 등으로 대피해 기다려야 한다. 이럴 때 민방위 훈련을 받은 이들이 민박을 알선해 주는 등 조치를 해야 한다. 매달 실시하는 민방위 훈련이 이번에 허점을 드러냈다. 선진국의 민방위 훈련은 주로 관리.운영인들이 하며, 우리처럼 대개 아랫사람들만 참가하는 훈련은 없다.

정용승 한국교원대 교수.한중대기과학연구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