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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페놀 유출, 대책은 없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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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경북 김천의 코오롱유화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진화 과정에서 페놀이 낙동강으로 유출돼 한바탕 소동을 겪은 지 두 주일이 지났다. 1991년 3월, 경북 구미의 한 전자공장에서의 페놀 유출로 낙동강 중하류 1000만 주민을 떨게 했던 최악의 환경사고가 있은 지 꼭 17년 만이다. 다행히 이번 사고의 피해는 최소한에 그쳤다. 해당 행정기관들의 신속한 대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되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유출된 페놀의 양이 11.2 Kg(경찰 추정)으로 극소량이었다는 데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91년 사태에서는 페놀 원액이 30t이나 유출되었다.

이번 사고의 뒤처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우리 사회는 늘 그러하듯 사고 책임을 따지고 적절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에 바쁘다. 하지만 17년 전에도 그러했고, 얼마 전에 터졌던 태안 원유 유출 사고 때도 그러했듯이 사고 책임자 규명은 차일피일 미루어지다가 흐지부지되기 십상이었다. 감사원이 특별점검에 나섰다고 하지만 짧은 감사 일정에 각 기관의 사고 대처와 유관기관 연락·협조 체계 여부를 규명하고 제대로 된 대책 마련까지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볼 수 있으면 대책 마련도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는 법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사고의 실체를 점검해 보기로 하자. 이번 페놀 유출 사고는 일찍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86년 스위스 바젤에서 한 제약회사에 화재가 발생했고, 진화 과정에서 1000t이 넘는 유독성 화학물질이 라인강으로 흘러들었다. 91년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빚어진 사고였기에 이 사건 발생 이후 우리 정부는 재발 방지 대책을 서둘렀다. 당시에 과연 어떤 대책이 만들어졌을까?

그 대책의 골자는 ① 낙동강 연안 주요 지점에 수질 자동측정망을 설치하고 ② 환경부 주관으로 광역행정협의회를 개최하며 ③ 낙동강 수계 폐수 배출 감시경보 체계를 확립하고 ④ 낙동강 유역에 산재한 공해배출업소 단속을 강화하는 것 등이었다. 이런 대책 시행의 주무부처는 어디였을까? 처음 3개 대책은 전적으로 환경부가 책임기관이었다. 네 번째 대책은 환경부와 해당 지역 시·도가 공동으로 시행하도록 돼 있었다.

이번 사고에서 환경부가 운영하는 수질 자동측정망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폐수 배출 감시경보 체계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4대강 수질관리 문제를 전담하는 산하 기관으로 유역 환경청까지 두고 있지만 환경부는 자신들의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이번 사고에서는 페놀 유출을 처음 발견하고 신속하게 대처했던 김천시 공무원들의 공로가 컸다. 페놀의 하천 유입을 감지하자마자 즉각 상수도 공급을 중단하고 비상급수를 시행했던 한국수자원공사의 대응도 기민했다. 화재 진압 과정에서 유독물질 유출까지 걱정할 만큼 사정이 한가롭지 않았다고 생각되기에 지역 소방서에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고 생각된다. 이 기관들에 굳이 책임이 있다고 한다면 관련 기관들 간의 협조를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했다는 점 정도를 꼽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유관기관들 간의 협조체계 구축조차도 그 궁극적인 책임은 환경부에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환경부가 관련 기관 간의 협의조정을 위해 낙동강수계관리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 위원회의 기능에 ‘수질보전활동이나 수질감시활동의 지원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91년 페놀 유출 사고 이후 4대강 특별법을 만들어 자신들의 위상을 한껏 높였고 수질 개선에 엄청난 예산을 집행했다. 이런 활동에 이번 페놀 유출 사고와 같은 사태의 예방과 철저한 뒤처리까지 모두 포함돼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17년 후 과거와 똑같은 사건이 발생했다. 만약 이번에도 책임을 철저히 묻지 않는다면 제3, 제4의 페놀 유출 사고가 터지지 않으리라고 누구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