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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건강] 알몸 졸업식? … 너희들 어느 별에서 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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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격정의 청소년기라지만 자녀가 사회적 통념을 벗어난 행동을 할 때 부모는 당황스럽다. 물론 혼도 내고 달래도 본다. 하지만 별반 효과는 없어 보인다. 때론 ‘문제다 싶으면서도 공부에 방해될까 봐’ ‘어른이 되면 좋아지겠지…’란 기대를 하며 지나치기도 한다. 설사 큰마음 먹고 태도부터 고쳐 보려 해도 도대체 어디까지 허용 가능한 일탈인지, 어떤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도 막막하다. 세대도 다르고 다양한 심리·사회적 변화를 겪는 내 아이의 청소년기, 부모로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자녀와의 갈등은 눈높이 교정으로=현대화는 청소년기를 연장시켰다. 실제 농경 사회에선 청소년 무렵부터 농사일을 하면서 경제활동을 시작했고 결혼도 해 가정을 꾸리고 살았다. 신체적 성년기와 사회적 독립이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던 것. 반면 지금은 영양상태가 좋아져 사춘기는 빨라진 반면 학업 기간은 길어져 정신적·경제적 독립 시기가 늦어졌다.

통상 청소년기는 사춘기 신체적 변화가 시작되는 초기(11~14세), 신체적 성년기를 맞이하는 중기(14~17세), 청소년기에 주어진 정신적 과제까지 성취해야 하는 후기(17~20세)로 구분되며 시기별로 갈등 해결 방법도 변한다.

예컨대 초경과 사정을 경험하면서 높아진 성에 대한 관심을 초기엔 인기인을 우상화하는 식으로, 중기엔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몰두하면서 해소하다가 후기로 가면서 진실된 사랑을 찾고자 노력한다.

청소년기는 부모의 간섭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한다. 자연히 갈등도 잦은데 심하면 머리 모양이나 옷차림, 방 정리 방법 등 사사건건 충돌한다.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정유숙 교수는 “부모가 청소년 자녀에게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자식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적 욕구를 성취하고자 강요하면 자녀는 불안감과 분노심을 보이며, 이는 반항적 태도로 표현되기 쉽다”고 말했다.

세대가 다른 자녀에게 ‘이렇게 하라’는 식의 일방적 강요 대신 번거로워도 자녀의 시각에서 매사를 판단하고 의견도 조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체성과 도덕성 확립이 중요=‘나는 누구인가’,‘미래에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청소년기는 이런 갈등과 방황으로 시작해 인생의 장기적인 목표·직업·친구 관계·성적인 행동·성적 취향·가치관·충성심 등의 정체성을 형성해 간다. 이 과정에서 개인적 경험·가치관·도덕관·인생관 등이 작용한다.

이시기에 정체성에 혼란이 생기면 감정표현, 행동, 수면 등 다방면에 문제가 생긴다. <표 참조>

이땐 가족치료·집단치료 등을 통해 조속히 문제점을 해결해야 된다. 자녀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부모는 자녀에게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가치관, 동일화할 수 있는 ‘이상적인 모델’을 제시하는 게 좋다.

◇통념상 허용되지 않는 행동은 제재 대상=지난달 졸업식을 마친 중학생들이 대낮에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뒤풀이’ 사건이 발생했다. 놀란 주민들의 신고로 경찰의 제재를 받은 참가자들의 태도는 “재미있잖아요. 몇 년 전부터 다른 학교도 다 하고 있는데…”라는 반응이었다.

졸업식 뒤풀이는 규제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만끽하기 위한 행사로 이전부터 교복 찟기, 밀가루 뿌리기 등의 행태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전부터는 나체 시위란 극단적 일탈 행위가 유행처럼 일어나고 있는 것은 문제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유한익 교수는 “몸은 어른으로 훌쩍 자라버린 청소년들이 부적절한 방법으로 해방감을 맛보려는 행태”라며 “사회가 공유하는 규칙을 벗어날 땐 ‘청소년기엔 그럴 수 있다’는 식으로 눈감아 주기 보단 ‘분명한 잘못’이라는 사실을 인식시켜야 한다”고 밝힌다.

그렇다면 극단적 일탈 행동은 왜 일어나며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유 교수는 “학교와 학생 간에 서로를 존중하는 인간적인 관계보다 힘의 역학에 의해 움직이는 수직적 관계가 더 크게 작용하다 보면 제재의 힘이 사라지는 순간, 어떤 일탈도 허용된다는 오해를 하기 쉽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를 예방하려면 규칙 준수에 대한 훈육과 더불어 학생과 부모, 학생과 교사 간 서로를 존중하는 인간적인 유대관계가 필요하다.

글=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일러스트레이션=강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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