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국민을 어린애 취급하는 '의민증(疑民症)'환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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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중 정책기획부 기자

"정부는 국민을 어린애 취급하는 '의민증(疑民症)'환자다."

정부가 4월부터 한번에 10만원어치 이상의 복권을 사지 못하게 규제키로 하자 인터넷에는 비난의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정부는 나름대로 이유를 대고 있다. 다량의 복권을 살 때 불편과 번거로움을 느끼게 함으로써 사행심을 억제하고 충동구매를 줄이자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국민에게 일부러 불편을 줘 국민이 자칫 볼지도 모를 피해를 미리 줄여주자는 것이다. 의도는 나쁘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복권을 얼마나 살지는 국민이 판단할 일이지, 정부가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할 사안이 아니라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른 상품의 1인당 구매액은 따지지 않으면서 복권에만 한도를 두는 데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규제의 실효성이 거의 없다는 점도 문제다. 복권을 10만원어치 이상 사고 싶을 경우 여러 판매업소를 돌아다니며 살 수 있다. 같은 곳에서 사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은 시차를 두고 여러 번 나눠 사면 된다. 물론 그렇게까지 하면서 복권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또 왜 하필 10만원이냐는 의문도 나온다. 정부가 보는 국민의 '복권 판단력'이 10만원 수준이어서 그랬을까.

이래저래 이번 조치는 현실성 없는 행정적인 '선언'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또 편법만 부추겨 법의 권위를 떨어뜨릴 수 있다. 정부가 복권을 둘러싼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비난을 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월 말엔 로또복권의 판매가를 절반으로 내리기로 한 반면 기존 복권의 당첨금을 최고 10배까지 올리기로 했다. 사행심을 억제하겠다던 정부가 오히려 사행심을 부추긴 꼴이다.

이런 식의 정책이 되풀이되면 정부도 권위를 잃고 국민도 피곤해진다. 정부에 대해 '너나 잘해'라는 식의 네티즌의 비아냥은 이래서 나온다.

감님중 정책기획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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