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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주인들 늘어난 양도세 매입자에 떠넘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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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서울 강남권이 최근 토지투기지역으로 지정된 이후 땅값이 파행적으로 오르고 있다. 땅을 파는 주인들이 늘어난 양도소득세 만큼을 땅값에 포함해 팔고 있기 때문이다. 토지시장을 안정시키려 시행하는 토지투기지역 지정이 땅값은 끌어내리지 못하고 되레 가격을 부풀리고 있는 것이다. 오른 땅값이 주택 분양가에 떠넘겨지는 부작용도 일고 있다.

빌라 건설 전문업체인 S사의 R사장은 최근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단독주택 3필지 553평 가운데 1개 필지 198평을 계약하면서 곤욕을 치렀다. 당초 평당 1600만원으로 협의했으나 매도자가 "실거래가로 양도세를 신고해야 하는 만큼 평당 100만원을 올려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절반씩 부담하는 조건으로 평당 1650만원에 계약했다.

S사는 이 땅에 55~62평형 빌라 28가구를 지어 분양할 계획인데, 당초 예정된 분양가보다 평당 30만원이 오른 평당 1230만원에 빌라를 분양할 계획이다. 양도세 부담 분이 분양가에 전가된 경우다.

그나마 S사는 이 정도로 사업할 수 있었기에 다행이다. 실제 시장에서는 양도세 전가분이 지나쳐 아예 사업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주택사업 시행업체인 L사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 강남역 인근의 주상복합용지 602평을 지난달 초 평당 5000만원에 매입키로 했으나 매도자가 양도세 부담분을 평당 600만원으로 책정해 매도가에 전가함으로써 계약이 깨졌다.

아무리 쥐어짜도 사업으로 이끌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중코리아 장정호 팀장은 "토지투기지역 지정이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취지라지만 현실은 오히려 땅값을 올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며 "당분간 서울에서 소규모 주택사업을 벌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빌라전문 시행업체인 K사도 최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청담초등학교 인근의 기존 빌라 부지를 매입키로 했으나 양도세 부담분의 책임을 서로 피하려다 사업을 접었다.

K사는 땅값을 평당 3000만원에 사들일 경우 고급빌라를 지어 분양하면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했으나 빌라 주인들이 가구당 2억~ 3억원씩이나 늘어난 양도세 부담액을 더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빌라 15가구(토지 800평)를 매입키로 한 O사도 땅값을 평당 2300만원을 주기로 했으나 주민들이 "양도세 증가분 중 평당 50만원을 추가 부담해 달라"고 요구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이 회사 徐모 사장은 "실거래가 양도세 부담이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당분간 사업을 하지 않고 시장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토지투기지역 지정은 양도 차익의 일부를 국가가 환수코자 하는 취지에서 시행하는 것"이라면서도 "현재 정상적인 토지거래에 지장이 있기도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땅값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황성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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