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주식회사 대장정] 6. 석유화학-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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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동북지방 지린시 쑹화강변에 자리잡은 지화의 유지합성 공장은 쑹화강을 따라 25㎞에 걸쳐 펼쳐져 있다. 경영진의 허가를 받아 공장 사진을 찍는 동안 일부 근로자들이 "간첩 아니냐"며 항의할 정도로 보안의식이 철저했다.[지린=김경빈 기자]

"서두르지 마라. 하나를 혁신해도 철저히 하라."

중국 동북방 지린(吉林)성 지린시에 자리한 지화(吉化.지린석유화학)는 종업원들에게 늘 이렇게 주문한다. 중국 최대의 석유화학업체로 생산 제품만 1000종이 넘는 이 회사의 근로자들은 첫째도 '혁신', 둘째도 '혁신'을 되뇐다.

유지합성 공장에 근무하는 류융하오(劉永好.42)는 "'변하고 개혁하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듣다 보니 잠자는 게 맘에 걸려 6개월 전부터 오전 5시에 일어난다"고 말했다.

1998년 시작한 경영혁신이 올해로 6년째. 꾸준한 경영혁신 덕에 석유화학 제품의 핵심 원료인 에틸렌 연간 생산능력은 매년 15만t 이상씩 늘어 지난해 100만t을 넘어섰다. 중국 전체 생산량의 20%인 데다 생산성도 중국 내 50여개 석유화학 업체 중 최고다. 전자제품의 케이스 및 자동차 내장재 원료로 쓰이는 고성능합성수지(ABS) 생산량도 중국 최고다. 연 30만t 규모로 중국 전체 생산량(48만t)의 63%를 담당한다.

지난해 매출(241억위안)은 전년(131억위안)보다 두배 가까이 되었고, 올해도 30%의 고성장을 낙관한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자국 내 최고 경영혁신 기업 중 하나로 지화를 선정한 것은 이 때문이다.

◇떠났던 인재가 돌아온다=지난해 초 지화 경영진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90년대 중반 더 나은 보수와 대우를 바라며 듀폰과 바스프 등 외국 유수의 화학기업들로 떠났던 핵심 개발인력 서너명이 한꺼번에 복직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기 때문이다. 화학제품 제조의 핵심기술인 촉매제 개발 전공인 이들은 복직 의사를 밝힌 당일, 연구개발팀에 합류했다.

이 회사 리뎬쥔(李殿軍)부사장은 "보수는 외국회사만 못하다"면서 "그러나 최근 몇년간 지화의 경영혁신을 보고 국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생각에 지화로 되돌아오는 핵심 개발인력이 부쩍 늘었다"고 밝혔다. 2000년 이후 지금까지 50여명의 인재가 복귀했다는 것이다.

무엇이 이들을 다시 지화로 발걸음을 돌리게 만들었을까. 2년 전 지화는 석탄과 관련된 화공제품을 생산하는 10여개 라인을 모두 정리했다. 국내 수요가 적지 않지만 미래가 없고 부가가치가 낮다는 판단에서다.

"중국에서는 아직도 석탄을 이용한 화학제품 시장이 큽니다. 그러나 10년 후엔 없어질 시장입니다. 지금 정리하지 않으면 경쟁력 약화의 주요 원인이 될 수밖에 없죠." 李부사장의 설명이다.

품질을 높이고 원가를 줄이기 위한 혁신 작업도 강도 높게 하고 있다. 2만여명에 달하는 현장근로자들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회사는 개인별로 작업일지를 의무적으로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제품에 하자가 생기면 누구의 책임인지 곧바로 알 수 있다. 10~20명씩 작업조를 짜 조 단위의 '위험 극복력 높이기' 운동도 병행하고 있다. 회사가 어떤 종류의 위험에 처하더라도 즉각 대처하고, 위험 자체를 사전에 예방하도록 각자 맡은 책임을 잘 완수하자는 취지다.

◇정부는 기술과 자금지원 창구=회사의 연구.개발 인력은 1000여명으로 전체직원(2만2000여명)의 5% 선이다. 연구.개발 인력이 많지 않은 편인데도, 석유화학의 핵심기술인 촉매기술은 한국보다 한수 위다. 화학제품을 만들 때 어떤 촉매제를 첨가하느냐에 따라 제품의 질과 용도가 결정되기 때문에 촉매제 제조기술은 화학공업의 수준을 결정한다.

중국 정부는 이런 촉매기술을 수십년간 연구해온 국가화학연구소의 성과를 대부분 지화에 넘겨줬다. 이를 바탕으로 지화는 수백종의 촉매제를 자체 개발했다.

지화가 자체 기술력으로 중국 시장을 선도할 수 있었던 데는 이 같은 정부 지원이 결정적이었다. 상하이(上海).톈진(天津).양쯔(揚子) 등 중국 내 여타 대규모 화학회사들은 촉매제 기술을 얻기 위해 BP.다우.바스프 등 다국적 회사들과 합작사를 설립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LG석유화학이 아크릴산을 만드는 데 필요한 촉매제를 개발한 게 국내 최초다.

게다가 지화 제품은 품질은 큰 차이가 없으면서 값은 한국 제품의 70% 수준에 불과하다. 촉매제 관련 기술 20여개는 로열티를 받고 동남아와 중동지역에 판매했다.

지화는 또 최근 10년 동안 695개의 신기술을 개발했고 이 중 237개 기술은 중앙정부의 인정을 받아 자국 내 화학제품 공장들에 이전됐다.

정부는 돈도 적극 대주고 있다. 현재 지화는 에틸렌 생산 30만t 증설공사를 진행 중인데, 여기에 소요되는 수억달러 규모의 재원을 대부분 지린성 정부가 지원하고 있다. 지린성은 지난해 2010년까지 중화학공업과 하이테크 산업에 1조위안(약 15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우리나라의 1년 예산보다 많은 규모다. 李부사장은 "향후 유기가공체와 농약, 유기물 중간재 가공 시설을 확충할 계획"이라며 "이 자금 역시 중앙정부와 성 정부에서 지원받는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영욱 전문기자(팀장), 김형수.최형규.김경빈 기자, 친훙샹 중국 베이징대 교수, 박승록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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