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독일과는 너무 다른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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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통독(統獨)이전 시기에 서독(西獨)은 이른바「계속성의 부담」에 시달려야 했다.서독이 아무리 자유민주주의와 국제평화를 외쳐도 주변국들은 서독을 군국주의 프러시아의 계속이며,나치 독일의계속이라는 의심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독은「계속성의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참으로 많은노력을 기울였다.자신이 군국주의와 나치즘으로부터 단절돼 있음을증명하기 위해 군국주의와 나치즘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그것들이 빚었던 역사적 과오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하는 조처들을 국가적 차원에서 여러 차례 취했다.
그러한 조처들 가운데 가장 상징적이었던 것은 빌리 브란트총리의 오체투지(五體投地)사죄였다.69년 이후 동방정책의 깃발을 들고 공산권에 과감히 파고들면서 동-서독 통일의 초석을 쌓았던그는 70년 현직 총리의 신분으로 나치에 학살된 폴란드 유대인들의 묘소 앞에 자신의 몸 전체를 던져 사죄하면서 피해자들의 용서를 빌었던 것이다.
나치 독일과 손잡고 2차세계대전을 일으켰다가 패전한 아시아의대표적 전쟁도발국인 일본(日本)은 서독과 대조되는 길을 걸어왔다. 일본 역시「계속성의 부담」을 피할 수 없이 안고 있는데,이 짐을 청산하려는 노력에 매우 인색했던 것이다.
우선 군국주의적-침략주의적 과거와의 단절을 국가적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선언한 일이 없다.역사적 과오를 진정으로 사죄한 일도 없다.
단절선언이나 사죄는 커녕 오히려 과거를 미화하고 과오를 정당화하는 오만방자한 작태를 보여 온 것이 전후(戰後)일본의 대외행태의 한 흐름이다.
종전 50주년을 맞아 일본 국회가 과거 청산의 한 작업으로 부전(不戰)결의를 하려 하자 일본의 우익세력이 온갖 책동으로 방해하는 현실,그래서「부전결의」의 의미 자체가 사실상 희석되고있는 현실은 바로 그러한 흐름을 압축적으로 반영 하는 것이다.
최근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와타나베 미치오(渡邊美智雄)前일본외상의 망언에 우리가 격분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강점을 합리화한 와타나베의 역사왜곡은한 시대착오적 광인(狂人)의 고립된 발언이 아니라 인류의 시계바늘을 1세기 전의 식민주의 시대로 돌려놓으려는「계속주의」세력의 공모의 산물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 이다.
공정히 말해 일본 국내에도「단절주의」세력이 있다.그들은 일본도 지난날의 서독처럼 국가적 차원에서 군국주의 일본과의 단절을공식 선언하고 그 징표로 군국주의 일본이 저질렀던 역사적 과오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단절주의자들의 목소리는 계속주의자들의 목소리에 눌려 있다.바로 이 점 때문에 동아시아의 진정한 협력과 평화를 바라는 많은 나라들은 일본의 앞날에 대한 우려와 경계를 풀지 않는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20세기의 황혼속에 21세기의 여명을 바라보며 태평양 시대의 도래(到來)를 준비하고 있다.그러한 시대적 전환기에 우리는 과거에 지나치게 매이지 않고 미래를 지향하고자 한다.
韓日관계도 그러한 대국적 차원에서 발전시키고 싶은 것이 우리의 소망이다.
그러나 일본이 「계속성의 부담」을 청산하기는 커녕 스스로 더욱 키워나갈 때 우리의 대응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우선 와타나베 망언으로 요약된 일본 국내의 망동(妄動)을 엄중 항의하고 재발이 없도록 강력히 대응하기 바란다.
〈檀國大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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