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중견기업] ‘빨간펜’ 엄마 선생님들 학습지 왕국을 그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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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대한민국 엄마라면 누구나 다 아는 회사가 있다. 학습지 ‘빨간펜’ ‘구몬학습’으로 유명한 교원그룹이다. 지난해 재계 관련 사이트인 재벌닷컴이 400대 비상장사 최대주주 지분가치를 평가했을 때 이 그룹 장평순(57) 회장이 4376억원으로 1위를 차지했다. 그룹 매출은 이미 2002년에 교육출판만으로 1조원을 넘겼다. 그러나 20여 년 전만 해도 30평짜리 방 한 칸이 전부였던 초라한 회사였다.

보험설계사와 전집 방문판매 영업사원으로 두각을 나타내던 장 회장은 1985년 교원의 전신인 중앙교육연구원을 창업해 학습지 ‘중앙완전학습’을 팔았다. 전집은 큰 돈이 필요했지만 학습지는 적은 돈으로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쇄할 돈도 없어 타자기로 쳐서 낱장을 등사해야 했지만 반응은 좋았다. 전집을 팔던 시절 엄마들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이다. 불과 1년 만에 세든 건물의 한 층 전부를 다 쓸 만큼 성장했다.

그러나 민주화와 함께 불어닥친 파업 바람을 그대로 맞았다. 80년대 말 편집부 파업으로 40여 일이나 학습지를 만들지 못했다. 학습지는 잡지 만들 듯이 매달 새로 만들어 팔아야 하는데 두 달 넘게 못 만들었으니 회사가 망할 지경이었다. 자금력이 풍부하지 않을 때라 더 어려웠다. 겨우 수습을 하고 일본 라이선스인 ‘구몬학습’을 창간해 막 인기몰이를 하던 90년대 초,

이번엔 월급제를 성과제로 바꾸겠다는 방침에 방문교사들이 파업했다. 지도교사 1200여 명 중 1000여 명이 나갔다. 당시 지도교사 대부분이 미혼이었는데, 이때 방문교사 대부분을 주부로 바꿨다. 애를 키워본 경험과 노련함이 더해져 엄마들로부터 전보다 더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를 계기로 지도교사 교육도 강화했다. 교원은 2000년 도고연수원을 시작으로 현재 전국 어디서든 차로 2시간 이내 거리에 자체 연수원을 두고 있다.

교원은 학습지로 유명하지만 사실 전집시장에서 더 독보적이다. 지금까지 판매한 전집이 3억 권이 넘는다. 교보문고가 창립 이후 판매한 전체 책 권수보다 많다. 또 이 책들을 다 이어놓으면 길이 6400㎞인 만리장성의 14배가 넘는다.

교원은 한때 한 달에 전집만 500억원어치를 팔았으나 이제는 150억원 수준에서 맴돈다. 출산율이 주는 등 내수시장이 쪼그라든 탓이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눈을 돌린 게 바로 해외 시장이다.

창업 초기엔 번듯한 작가나 일러스트레이터를 쓸 형편이 못 되고 편집 실력도 형편없어 주로 일본에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전집을 번역해 팔았지만 지금은 거꾸로 저작권료를 받고 해외에 전집을 판다. ‘호야토야의 옛날 이야기’와 ‘꼬잉꼬잉 이솝 극장과 철학 동화’ 등 14개 전집을 12개 지역에 수출하고 있다. 심지어 ‘삼국지’를 대만에 수출한다. 프랑스의 저명한 출판·문화 주간잡지인 ‘리브르 에브도(Libres Hebdo)’가 발표한 ‘2007 세계 리딩 출판기업 톱 45’에 선정될 정도로 국제시장에서도 꽤 지명도를 키웠다.

여기엔 장 회장의 과감한 투자가 주효했다. 대학생 일러스트레이터를 써서 만드는 ㅍ저가 전집과 달리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마케팅 전략이 먹힌 것이다. 백과사전인 ‘주니어 라이브러리’는 5년의 제작 기간 동안 제작비 100억원을 쏟아부었다. 해외시장을 겨냥해 해외 유명 작가·일러스트레이터와 직접 계약해 출판했다. 주위에선 “제작비나 건질까”라는 회의적 시선이 많았지만 뜻밖에 세계시장에서 통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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