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성당.절은 治外法域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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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통신 노조간부에 대한 구속영장을 집행하러 간 경찰이 피의자는 보지도 못한채 성당과 사찰 문 앞에서 신부.스님등에게 구속영장을 제시하다 힘없이 발길을 돌리는 일이 며칠째 반복되고 있다.누구도 제대로 지키려 하지 않고,천덕꾸러기 대접을 받는 우리 실정법의 현 위상을 적나라하게 보는 것 같아 여간 안타깝고 민망스럽지 않다.
농성중인 노조간부들은 이미 법원에 의해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된상태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범법자들이다.법치주의 국가에서 범법자들을 공개적으로 숨겨주고 비호(庇護)하는 일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엄연히 실정법 위반으로 구속영장까지 발부된 피의자들을 종교시설이라고 해서계속 비호하며,공권력의 집행을 막는 일이 장기화되어선 안된다.
그렇다고 해서 성직자들이 농성중인 노조원들을 붙잡아 경찰에 넘기도록 기대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성직자로서 어려운 처지에서도움을 바라며 스스로 찾아온 사람들에 대해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는 어떤 처리도 하기 어려우리란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공권력의 무력화(無力化)가 장기화되면 국가의 기강이 설 수 없다.따라서 종교시설이기 때문에 계속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리라 기대해선 안된다.종교계에서는 더 큰 마찰을 피하고 국가 공권력행사를 저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농성 자들에게 자수를 적극 권유해야 한다.범법자들을 성당.사찰에서 보호해주는것이 종교적인 사랑이라면 그들이 올바른 법의 판단을 거쳐 하루빨리 가정으로 돌아가도록 도와주는 것도 사랑이 아니겠는가.
벌써 노조원들이 성당.사찰을 찾아가 농성을 시작한지 열흘이 넘었다.이제 더이상 국민들에게 종교시설이 성역이나 치외법권 지역으로 오인돼서는 곤란하다.또 스스로 찾아온 범법자에 대해 마치 종교시설이 숨겨주고 보호해줄 권리라도 있는 것 처럼 당연시되어선 더욱 안된다.
정부도 스스로의 책임 아래 법을 집행하기 위해 일부의 비판쯤은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할 것이고,종교계도 정부의 조치에 앞서사랑과 법에 바탕을 둔 적극적이고 자율적인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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