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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노믹스 연출하는 585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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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새로운 세대가 공직 사회의 전면에 등장했다. 195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진출한 50대 관료들이다. 이른바 ‘585세대’인 이들이 기획재정부 등 경제 부처의 핵심 보직 국장을 맡게 됐다. 관료 생활 27~28년 만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산업화 시대에 공직을 시작해 진보정권 10년을 거쳐, 친시장·친기업의 MB노믹스 주역으로 옷을 갈아입은 것이다.

585세대의 선두는 행시 24회다. 임채민 지식경제부 1차관, 신제윤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 임종룡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 이상길 농림수산식품부 축산국장 등이다. 일부 부서에선 24회가 선배 기수인 22, 23회를 제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한나라당 정두언·임태희 의원도 24회다.

585세대는 6·25 전쟁 후 베이비붐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에 태어나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았다. ‘58년 개띠’들이 주력이다. 고교 평준화가 시작되면서 명문고 출신이 줄어든 것도 이전 세대와 다른 점이다.

이들은 경제정책을 만들며 고도 성장과 그에 따른 우리 사회의 성장통을 지켜봤다. 경력의 대부분이 민주화 운동이었던 노무현 정부의 ‘386’과 구별되는 대목이다. 76, 77학번이 주축인 585세대는 정치적 암흑기였던 유신 후반기에 대학교를 다녔다. 시위에도 참여했으나 좌절을 맛보고, 고시로 방향을 틀었다. 이상길 농림수산식품부 축산국장은 “대학 1학년 때는 친구들과 적잖게 데모를 했으나 회의감을 느껴 2학년 때 고시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24회는 80년 고시에 합격해 81년 임용됐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은 암울했던 시기였다. 2차 오일쇼크의 여파로 기름을 확보하러 중동 국가를 찾아 다녔고, 사무관 시절 한 해 20% 이상 치솟는 살인적인 물가를 잡기 위해 머리를 짜내기도 했다.

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과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때 585세대는 실무 협상의 주역이었다. 박현출 농림수산식품부 농업정책국장은 “국민들 간 이해 관계가 상충해 담당자로서 고민이 많았다”며 “FTA로 어려움이 예상되는 농어민들을 최대한 보듬는 정책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외환위기 뒤인 99년에야 본부 보직과장을 맡는다. 이들은 대우 사태, 카드 대란 등 외환위기의 잔재를 정리하는 일을 맡았다. 신제윤 기획재정부 국제업무 관리관은 “외환위기와 그 뒤 잇따른 금융위기를 수습하면서 아무리 외부에서 충격이 와도 국내에 위기 요인이 없다면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585세대는 노무현 정부 때 국장급인 부이사관으로 승진했으나 대부분 본부 국장을 맡지 못한 채 외곽을 떠돌았다. 선배 기수인 22, 23회가 각각 250명에 달해 발붙일 데가 별로 없었다. 이들이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마침내 각 부처의 핵심 자리를 장악한 것이다.

585세대는 성장을 최우선으로 했던 산업화 시대와 분배와 균형에 무게중심을 둔 진보 정권을 두루 겪었다. 이들은 “진보 정권 10년 동안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고, 공무원의 무력함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많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자전거가 균형을 잡기 위해 좌우로 흔들린 것으로 봐달라”고 지난 세월을 표현했다.

공직사회엔 ‘정책은 국장이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한 관료는 “정책의 결정을 국장이 하고, 책임도 국장이 진다”고 말했다. 그만큼 585세대가 체감하는 부담감도 크다. 세상도 많이 바뀌었다.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은 “외환시장이 사무관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커진 데 비해 정부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는 제한돼 있다”고 말했다.

정책을 생산하는 방식도 많이 달라졌다. 서종대 국토해양부 주거복지본부장은 “예전엔 한 달 이상 걸리던 결정을 지금은 2~3일 안에 해야 할 정도로 의사결정의 속도가 빨라졌다”고 말했다. 육동한 기획재정부 정책조정국장은 “정부 정책이 일방적으로 먹히는 시대가 지난 만큼 국민을 설득하고, 갈등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렬·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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