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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왜 여성장관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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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프랑스 정계의 우먼파워 돌풍이 전세계적인 화제다.지난주 발표된 자크 시라크대통령의 첫 내각의 장관 42명중 12명이 여성으로 프랑스 역사상 최대를 기록한 것이다.이는 미테랑 前대통령시절 여성총리 에디트 크레송(91~92년)때의 여성장관 5명은물론 마지막 내각의 8명과 비교해도 엄청난 증가다.
왜 여성 장관인가.시라크의 대답은 확실하다.그의 선거공약중 하나가「보다 여성다운 정부」였기 때문이다.긍정적 측면에서의「여성다움」이란 남성에 비해 정직하고 이해심 깊고 부드러워 다른 사람들의 고통이나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주려 는 성향이라고 심리학자와 여성학자들은 말한다.
그러면 여성다운 정부란 무엇인가.실업(失業).치안.교육.교통등 국민의 생활과 직결된 분야에서 국민의 가려운 곳,답답한 곳,아픈 곳을 긁어주고 뚫어주고 위무(慰撫)해주는 정부를 의미한다.「군림」하지 않고「봉사」하는 정부다.
그런 역할을 맡을 각 부처의 장(長)으로 남성보다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풍부하고,섬세함을 갖고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삶의 방법에 익숙한 여성을 택한 것이다.이는 12명 여성장관들이 임명된 부처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보 건.교육.관광.대외무역.교통.환경.분쟁지역문제.지방담당등.신설 부서인 세대간의 연대를 위한 부(部),소외계층 퇴치부에도 여성을 임명했다. 괴테는『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救援)한다』고 했다.60~70년대 유럽에서 핵무기 개발 반대운동에 앞장섰던 여성들도 핵무기가 종국에는 인류의 대량 살상(殺傷)을 초래할 것이라는 이유에 덧붙여 생명을 창조하는 여성으로서 인 류가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것을 앉아서 볼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자신의 몸안에서 생명을 잉태해 키우고,참담한 진통끝에 아이를낳아 돌보는 어머니의 손길이 나라살림에 효율적으로 적용된다면 우리의 삶은 보다 인간적이 될 것이다.시라크 대통령이 「여성다운 정부」를 내세운데는 여성 유권자가 절반을 넘 어 53%에 이르고 이번에 임용된 여성 장관들의 상당수가 그의 선거를 도운동지라는 정치적 의미와 함께 이러한 여성적인 특징도 고려했으리라 생각된다.
미국의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와 패트리셔 애버딘은 근저(近著)『메가트렌드2000』에서 2000년을 눈앞에 둔 우리가 겪게될 큰 변화의 하나로 「1990년대 여성 지도자 시대의 도래」를 들었다.물리적인 힘보다는 두뇌를 요구하는,정보 화 시대에 필요로 하는 지도자의 요건 즉 윤리적이고,개방적이고 변화에의 적응이 빠르고 조직원의 헌신을 이끌어내는 동기부여를 잘 할 수있는 리더로는 대체로 남성보다 여성이 더욱 적합하다는 것이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필리핀의 아키노 같은 여성 지도자들은 남성을 모방하지도 섣부른 카리스마 행태를 답습하지도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구사해 왔다는 것이다.
시라크 대통령은 곧 있을 지방선거에서도 여성을 남성과 같은 비율로 공천하겠다고 한 만큼 아직까지 스웨덴.노르웨이등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여성들의 정치참여가 뒤졌던 프랑스 여성들의 정계진출은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지난주 「실언(失言)」으로 또 한명의 여성장관이 퇴임해 이제 여성장관은 정무제2 단 1명이다.93년 신정부 출범후 총6명의 여성장관이 임명되었지만 자질시비로부터 시작해 대부분 1년미만으로 스쳐 지나가 나름의 역량이발휘되고 검증받은 경우는 드물다.
이제 곧 치를 지방선거는 그야말로 일상의 삶과 직결된 지역살림을 할 일꾼을 뽑는 선거인 만큼 누구보다도 여성들이 그 일을잘 알고 잘 할 수 있는 자리다.능력있는 여성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정치권의 결단을 기대해본다.
〈심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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