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연구회"봄철 발표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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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철학은 원래 추상적인 학문이기 때문에 현실문제와 분리되게마련」이라는 말을 방패로 독단과 독선을 행사해도 좋은가.』 지난 20일 열린 철학연구회(회장 정대현.이화여대교수)주최「해방50년의 한국철학」주제의 춘계발표회에서 연세대 박순영 교수가 「대학 철학교육의 반성과 과제」란 발제논문 말미에 던진 물음이다. 박교수는 이 글에서 철학에 대한 일반의 관심과 요구는 매우 높지만 현재의 철학연구가 이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아 관심을 끌었다.
철학의 위기를 가장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강단.
박교수는 올 봄 전국 15개 대학 전공 및 비전공학생 1천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한국사회에서 철학의 역할이 증대돼야 한다는 응답이 79.4%에 이르렀으나 현재의 철학연구에 대해서는 3.5%만이 만족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박교수는 이러한 결과를 교과과정과 강의내용 두가지로 나누어 분석했다.그는 사회의 변화나 수강생들의 관심변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교과목의 획일성(68.6%)때문에 학생들의 51%가 교과목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응답자의 절반에 해당하는 49.1%가 교과과정이 전공별로 골고루 분포돼 있지 못하다고 대답했다는 것.
그는 또 강의내용과 관련,학생들은 강의가 어렵다고 느끼고 있으며 교재선택이 적절치 못한데다 우리 현실에 연결고리를 갖지 못한채 유리돼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상업주의의 만연으로 인문학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이야기는이미 여러차례 나온 바 있다.
이점에선 철학도 예외가 아니다.이화여대 이규성 교수는「자기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의 맹목성,이 맹목성에 눌려 있는 합리적 이성,종교를 내 세운 인종주의,민족간의 도살,그리고 이들과결합하고 있는 국가주의」와 같은「속물주의」가 철학의 위기를 낳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발표회는 이를 극복할 새로운 전망으로「역사를 초월한 인간-생태학적인 배려를 전제한 인성론」(이규성 교수),「문화보편주의의 새로운 모습」(김여수 서울대 교수),「사변적 이성으로부터 감각의 복권」(박동환 연세대 교수)을 들었다.
그러나 마지막 종합토론에서 학자들은 한결같이 총론적 성격을 가진 이러한 전망들이 문제해결에 다가가기에는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박교수의 지적처럼 오늘날 철학의 위기는 철학이 현실을 끌어안거나 개입할 수단을 상실했다는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사회과학이 이론과 현실의 관계지움이란 문제의식을 수용, 발전의 계기로 삼은데 비해 철학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배타시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이제라도 철학이 어떤 인식론적 조건에서 현실에 개입할 수 있는가를 고민할 때라는 이규성 교수의 주장은 새겨볼만하다. 金蒼浩 本紙학술전문기자.哲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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