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0면

임희경은 그렇게 말해 놓고 속으로는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얘기해 놓고 나니 자기도 꽤 어른같은 것이었다.그리고 소포얘기는 거짓말은 아니었다.임희경은 정민수를 설득하기에 지쳐 혼자 열받다가 될대로 되라 하는 마음에 어제 소포 를 부쳤던 것이다.정민수는 그 말을 듣더니 마치 감전된 듯이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임희경을 바라보았다.그리고는 임희경을 꼭 부둥켜안고 깊은 키스를 한 다음에 나갔다.그리고 그날 저녁 경찰로부터 연락이 왔다.정민수가 고수부지에서 물에 빠져 죽었다고….
임희경은 하늘이 무너질 것같은 충격을 받았으나 의외로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담담한 기운이 올라왔다.매도 빨리 맞는 것이좋은 것이다.심리적인 고문 기간을 그만큼 줄일 수 있을 테니까….그리고 이는 자기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로서도 어쩔수 없는 일이다.나는 그를 지배하려 했고 그는 나를 지배하려 했으며 나는 그에게 지배당하려 하지 않았고 그 또한 나에게 지배당하려 하지 않았다.그렇다면 필연적으로 한쪽이 죽거나 없어져야 이 전쟁은 끝나는 것이다.전쟁 이 길어봤자 서로 소모만 될뿐 좋을 게 없다.로마와 카르타고의 기나긴 전쟁을 봐라! 결국한쪽이 작살나고 마니까 평화와 발전이 이어지지 않더냐.이제는 전쟁이 끝났으니 뒷마무리나 깨끗이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임희경은 그렇게 독한 마 음을 품고 고수부지로 나갔다.역시 정민수는행복한 웃음을 짓고 죽어 있었다.전쟁은 끝났고 그는 나의 감시와 지배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것이다.그 때 서채영이라는 인물도만났다.흥신소를 통해 이미 그녀의 얼굴에 익숙한 임희경은 곧 그녀 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그이가 없는 이상 그녀는 두번 다시 기억에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그 후 한달여의 시간이 흘렀다.임희경의 차갑고 독한 마음은 점점 약해지기 시작했다.아무리 왕도 좋지만 신하가 있어야 왕 노릇도 할 수 있는 것이 다.그리고 곰곰 생각해 보니 그가 자살한 것은 부질없이 조잘거린 자기 입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무의식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그에게 자기가 너무 몰아붙였던 것이다.그래 어느 무의식이 의식에게 죽으라는 메시지를 보내겠는가.
자기( 무의식)도 죽을텐데….그런데 정민수는 임희경의 주책속에서 무의식의 메시지를 발견했던 것이다.이제 갈 길은 죽음밖에없다는….그렇게 생각하니 임희경은 못견디게 괴로웠다.그리고 홀로 남겨져서 독한 마음을 먹고 살려고도 해봤지만 혼자 힘 으로서는 도저히 더이상 살아갈 자신도 없었다.그래서 그때부터는 정말 심각하게 자살을 고민했다.남편이 죽은 이상 자살해도 남들이자기를 비난할 것 같지는 않았다.또 그렇게 고통스럽게 한평생을살아봤자 뭐하냐.그래서 임희경은 그 때부터 어떻게 하면 멋지게죽을까 궁리했다.클레오파트라는 자기의 아름다움을 보호하기 위해뱀에 물려 죽었다는 데 나도 뭔가 우아하게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