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수영화산책>"노스바스의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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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향토색 짙은 지방 소도시의 아름다움은 미국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도회의 매끈한 맛은 없어도 구수한 인정이 넘치는 곳.영화에서 선보이는 가공도시 노스바스라는 곳도 그런 시골읍내다.
이곳에서 평범하게 사는 두 노인이 주인공이다.한 사람은 교사출신의 팔순 할머니이고 다른 한사람은 멍청하게 사는 육순의 품팔이로 왕년엔 사제지간이었지만 이제는 집주인과 세입자의 관계다.별볼일 없는 두 사람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하잘것 없는 세상사들이 문화권이 판이한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가슴에도 잔잔한 감동을 일으킨다.
두 노인역이 당대 최고스타의 황금배역이라는 것은 이 영화의 감동요소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죽음을 앞둔 제시카 탠디(출연 얼마후 사망)와 초로의 폴 뉴먼이 펼치는 원숙한 연기에서는 노장의 건재함을 확인하게 되지만 그들 명망이 보여주 는 것이란 「아름다운 늙음」이상의 것이 못된다.
세입자를 수족처럼 부리며 잔소리가 심한 할머니나 절뚝걸음으로막노동을 하면서 태연하게 고용주의 물건이나 훔치는 얌체노인역은아무래도 대스타가 맡을 배역이 못된다.슈퍼스타급인 브루스 윌리스도 주색잡기에 빠진 노동판 십장으로 나오는데 출연자중 변변한인물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
이기지 못하는 송사(訟事)만 도맡아 하는 날라리변호사나 자기동네에 신도시가 들어서기만 학수고대하는 염치없는 상속권자 등 그야말로 바보들의 행진이다.그들 모두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보통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나오는 일상적인 이야기가 뭐 그리 대단하겠는가싶겠지만 이 영화의 매력은 바로 그런 평범 속에 있다.어떤 면에서는 스스로 바닥인생이라고 자탄에 빠진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일깨워 주며 살아갈 용기를 심어 주는 내용이 다.
이 영화가 주는 확실한 메시지는 실패한 인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원제명(Nobody's Fool) 그대로 누구도바보일 수 없는 이 세상에서는 약간 모자라는 사람이 오히려 축복받은 인생일 수도 있다는 시각으로 사물을 긍정 적으로 바라본다.유쾌한 삶의 현장인 노스바스 같은 소도시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요즘 시장(市長)을 꿈꾸는 사람이 많은데 이런 도시를 가꿀 생각은 없는지….
편집담당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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