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비지트-어느 악단의 조용한 방문, 낯선 남자들과의 하룻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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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호 18면

★★★
감독
에란 콜리린
주연
새슨 가바이
로니트 엘카베츠
러닝타임 85분
개봉 예정 3월 13일

예산 삭감으로 해체 위기에 처한 이집트 경찰 밴드가 이스라엘 공항에 도착한다. 지휘자 투픽(새슨 가바이)은 아랍문화센터에서 열리는 이번 공연이 밴드 해체를 막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들이 도착한 마을에 아랍문화센터는 없다. 발음을 잘못 알아들어 ‘페타 티크바’ 대신 ‘벳 하티크바’라는 외진 마을에 오고 만 것이다. 버스는 이미 끊겼다. 밴드는 레스토랑 주인 디나(로니트 엘카베츠)의 도움으로 둘씩 셋씩 흩어져 마을 주민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이스라엘은 먼 옛날 이집트를 탈출한 민족이 세운 나라다. 그러므로 이집트에서 왔다는 말에 다짜고짜 “무슬림?”이라고 묻는 사람들과 제복을 차려 입은 이집트 경찰들이 만나는 순간 관객은 정치와 종교와 문화적인 갈등, 그리고 하룻밤 사이의 화해를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영화 ‘밴드 비지트’는 그 모든 거대한 질문을 의식하지 않는다. 낯선 이들의 만남에서 오해와 갈등이 없을 수는 없으나 ‘밴드 비지트’가 담는 하룻밤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하기 때문이다. 완고하고 자신을 드러낼 줄 모르는 경찰 투픽과 오마 샤리프를 사랑하는 분방한 디나의 짧은 데이트, 바람둥이 경찰 할레드가 소심한 마을 청년 파피에게 전수하는 연애 비법, 부부 사이의 갈등을 증폭시켜 버린 세 경찰의 난감한 처지. ‘밴드 비지트’는 다정한 시선과 유머로, 아무 사건도 없었지만 많은 일이 있었던 하룻밤을 기억해 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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