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중 방통위원장 후보 검증 ‘미디어 권력 쟁탈전’으로 변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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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공방 때문에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지연되면서 행정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방통위와 업계에서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를 합친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달 29일 공식 출범했으나 후속 절차가 중단되면서 방송·통신 정책은 올스톱됐다.

이런 가운데 최시중(사진) 위원장 후보자룰 둘러싼 논란이 능력에 대한 검증 여부를 넘어 ‘미디어 권력 쟁탈전’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까지 제기되고 있다. 학계 전문가들은 “여야 합의로 선진국형 기구를 만들어 놓고는 또다시 후진적인 이데올로기 공방에 빠져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구멍 뚫린 방송·통신 행정=일본 총무성은 7일 각계 전문가 30여 명으로 구성된 ‘IPTV 특별위원회’를 설치키로 했다고 밝혔다. 일본의 IPTV 기술을 세계표준으로 삼기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팔을 걷어 붙이겠다는 의미다. 선진국들은 부가가치가 큰 미디어 융합시대를 선점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경쟁국의 잰걸음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여야는 이날도 최시중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 일정조차 잡지 못했다.

한나라당은 “총선을 대비한 흠집내기 공세만 하지 말고 청문회 일자를 잡자”(안상수 원내대표)고 촉구하지만 통합민주당은 “최 후보자 인사를 모든 방법을 동원해 막아낼 것”(최재성 원내대변인)이라며 청문회 자료 검토를 위해 17일로 늦추자는 입장이다.

그 때문에 행정 공백 사태가 지속되고 있다. 방통위의 출범으로 신분이 민간인에서 공무원으로 바뀌는 옛 방송위 직원들은 현재 ‘무적자’ 신세다. 예산 지원이 끊겨 건물엔 생수 공급도 안 된다. 방송 프로그램 심의, 채널 등록, 방송 시간 연장 등 기본 업무도 정지됐다.

통신의 경우도 결합 할인 상품에 대한 규제 완화 등이 시급하지만 차질을 빚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업계에 파급효과가 큰 IPTV 서비스가 지연될 가능성이다. 시행령 등 하위 법령을 4월까지 만들어야 하지만 예정대로 될지 불투명하다.

◇“독립성 시비는 반대를 위한 반대”=여야 간 공방에 더해 일부 언론 관련 단체를 중심으로 ‘최 후보자 낙마’ 움직임도 거세지고 있다. 최 후보자가 대통령의 측근이기 때문에 방송의 독립성이 훼손된다는 논리다. ‘실패한 CEO’라며 내부에서 퇴진 압력을 받아온 정연주 KBS 사장까지 “방송 독립성을 지켜야 한다”며 이런 흐름에 가세하고 있다.

하지만 논란을 지켜보는 방통위 관계자들은 착잡하다. 방통위의 한 관계자는 “이들 대부분은 지난 10년간 정부의 언론 정책과 비슷한 입장을 취하며 강한 발언권을 행사해 왔다”며 “정권교체 뒤 새 정부의 미디어 정책에 맞서는 권력투쟁적 요인도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 윤석민(언론정보학)교수는 “최근 후보자의 ‘방송 독립성’ 의지를 둘러싼 시비는 정략적으로 자행되는, 반대를 위한 반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과거 방송위의 독립성을 둘러싼 시비의 본질은 (대통령 측근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방송사나 시민단체, 정치집단이 대리인을 앉혀 놓고 사사건건 방송위를 쥐락펴락 흔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라는 게 윤 교수의 설명이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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