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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과문화

도시를 살리는 미술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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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본은 개개인의 능력보다는 시스템이나 규칙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회다. 일본에 머무르며 그 속의 미술 시스템, 특히 대규모 미술 행사인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요코하마 트리엔날레를 통해 요코하마시가 준비하는 문화정책이 일시성을 가진 문화 행사를 어떻게 장기적인 계획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다.

2007년이 베니스 비엔날레와 카셀 도큐멘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등 유럽에서 대규모 전시들이 열린 해였다면, 올해는 아시아의 여러 도시에서 비엔날레가 열린다. 2008년에는 광주 비엔날레(9월 5일)를 시작으로 부산 비엔날레(9월 6일), 상하이 비엔날레(9월 9일), 싱가포르 비엔날레(9월 11일), 서울 국제 미디어아트 비엔날레(9월 12일), 그리고 요코하마 트리엔날레(9월 13일) 등이 열린다. 그중 요코하마 트리엔날레는 시가 정책적으로 전시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 좋은 예다.

요코하마시와 일본 외무부 산하 국제교류기금 주최로 시작된 트리엔날레는 부두의 쓰지 않는 건물들을 고쳐서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전시가 끝난 후 그 건물들을 다른 용도의 공간으로 이용한다. 제1회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때 사용됐던 ‘레드 브릭’이라고 불리는 장소는 전시가 끝난 후 공연장과 커피숍, 상점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공연장에서는 예술가들이 작품을 발표하고 젊은 예술가들을 발굴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2008년에는 트리엔날레를 위해 ‘레드 브릭’ 부근 부두에 빌딩을 새로 지어 트리엔날레 이후에도 활용하게 할 예정이다. 시나 정부 소유의 부지에 트리엔날레를 계기로 건물을 개축하거나 신축해 일회성 이벤트를 장기적인 도시개발계획과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또한 요코하마시는 과거 집장촌이었던 고가네조를 트리엔날레 기간에 전시장과 상업 공간이 함께하는 문화의 거리로 조성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버려져 있던 이 지역을 재개발해 트리엔날레 기간에는 작가들이 운영하는 공간을 조성하고 여러 분야의 디자이너들을 초청해 일본의 또 다른 문화적 영역을 위한 실험장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요코하마시는 창조적인 예술가나 디자이너 등을 영입하기 위해 트리엔날레 기간 중에는 이 장소를 무료로 제공하는 한편, 커뮤니티 프로그램도 적극적으로 만들고 실행할 예정이다. 트리엔날레를 통해 일반인에게 지역을 홍보해 도시의 슬럼화를 방지하고, 안전한 지역이라는 이미지를 부각한다. 한편 요코하마시는 오래된 건축물을 보호하고 최소한의 리노베이션으로 도시의 역사성을 지켜나간다. ‘Zaim’이라는 공간은 오래된 건물을 시가 새롭게 고쳐서 젊은 예술가나 기획자에게 저렴한 임대료로 제공하는 장소다. 입주자들은 심사를 통해 시에서 선정한다.

일시적 행사로 머물 수 있는 비엔날레, 트리엔날레를 도시 재개발 프로젝트와 함께 진행함으로써 장소의 홍보효과를 높이는 한편, 버려졌거나 사용되지 않는 공간의 가능성을 장기적인 계획 하에 아트 프로젝트를 통해 발굴할 수 있다. 오래된 건물을 무조건 부수고 새로 짓는 방식이 아니라 보존하면서 창조적으로 개축하는 방식을 통해 도시의 역사성이 유지되면서 동시에 개발도 될 수 있는 것이다. 기업의 도시 개발은 경제적 유용성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 오래된 건축물들을 철거하고 새 건물들이 곳곳에 들어서게 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지방정부는 장기적인 활용방안을 찾고 지역의 특성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개발해 나갈 수 있다. 현재의 경제논리가 미래에도 반드시 유용하다고 볼 수는 없다. 우리도 단기적 유용성보다는 도시의 미래를 생각하는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도시개발계획이 필요하다.

김선정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미술이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