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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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임희경은 입으로는 복수를 뇌고 눈빛으로는 적개심을 번뜩였지만마음 한 구석은 그렇게 공허할 수 없었다.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 그 한구석에 있었던 것이다.정민수를 죽인 것은 자신이라는 사실이….그러나 임희경은 그것을 의식적 으로는 인정할수 없었다.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그래서 처음엔 마음 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던 그 사실을 의식적으로 마음 한 구석으로내몰기 시작했다.그리고 마음의 중앙으로는 남편과 열렬히 사랑했던 때의 기억,그 숭고한 사랑을 깬 연놈들에 대한 복수심을 가득 흘려넣었다.그러다 보니 점점 자기가 살인자라는 생각은 잊혀졌고 또 고통스러운 그 사실을 잊기 위해서라도 복수심을 더 불태우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나 아무리 마음 한 구석으로 그 사실을 내몰더라도 그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사실은 임희경을 순간순간 공허하게 만들곤 했다.그 때 임희경은 정말 우울했다.내가남편을 죽이다니….그래서 임희경은 나름대로 이런 마음의 공식을만들었다.진실과 허구를 교묘히 얽어매서 진실을 한구석으로 내몰고 외면할 수 있는….그래서 마음이 공허하고 괴로울 때마다 이공식을 써서 그 고통을 외면하곤 했다.지금도 바로 그 공식을 쓸 때가 온 것이다.화살을 쥐어서 날리는 임희경의 손끝으로 알수 없는 공허감이 차오르면서 점점 힘이 빠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임희경은 곁의 흔들의자에 않아 천천히 눈을 감았다.그녀의 감은 눈에 눈물이 글썽 맺혔다.
…임희경은 오래전부터 정민수가 자살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그녀는 누구보다도 정민수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정민수가의료보험조합과 장모와 싸울 때 임희경은 너무도 힘들었다.그동안둘은 너무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아왔는 데 정민 수가 갑자기 진실을 찾겠다고 하면서 고통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정민수는 힘든가운데서도 꿋꿋이 잘 버텼지만 임희경은 그 끝도 없는 싸움이 정말 힘들었다.그러나 남편의 뜻을 저버릴 수 없어 남편을 열심히 내조하던 중 임희경은 힘이 다 해 쓰러지고 말았다.그녀가 응급실에서 가까스로 의식을 회복했을 때 정민수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리고 그는 임희경의 두 손을 꼭잡으면서 앞으로 다시는 당신에게 고통을 주지 않겠노라고 하며 더 이상 싸움을 끌지 않겠다고 말했다.그 때 임희경은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다시 이전의 낙원을 되찾은 것이다.그러나 장모하고는 그런대로 화해를 했으나 의료보험조합과의 싸움은 그렇게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의료보험 조합은 자기네가 당한 만큼 불이익을 주고자 호시탐탐 정민수를 자극했기 때문이다.정민수가 싸움을 벌이면서 매스컴에 의사와 의료보험조합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검은 묵계가 폭로되면서 의료보험조합도 여러가지로 타격을 받았던 것이다.의료보험은 환자를 위한 보험이 아니라 의료보 험조합을 위한 보험이었던 것이다.정민수에게 실사를 하느니 보험요양기관을 취소한다느니 하는 경고가 올 때마다 정민수는 불같이 화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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