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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詩)가 있는 아침 ] - '히말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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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시영(1949~) '히말라야' 전문

라다크에서 어느 할아버지는 다람쥐처럼 조르르 지붕에 올라가 비 새는 곳을 수리하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 집앞 흔들의자에 앉아 소년처럼 잠시 붉은 얼굴로 타는 노을을 바라보다 그만 저 세상으로 가시었다 사람의 삶이 아직 광활한 자연의 일부였을 때



몬순기의 히말라야 트레킹을 사람들은 싫어한다. 주코라고 불리는 산거머리들 때문이다. 주코는 길섶의 습지나 바위.나뭇잎에 붙어 있다가 등산객의 몸에 잽싸게 달라붙어 흡혈을 한다. 독한 녀석은 살 속까지 파고든다고 한다. 그 여름,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며 두 무릎 모두 주코의 습격을 받았다. 바짓가랑이에 붉은 빛이 번져나갈 때 그것이 점심 시간에 흘린 토마토 케첩의 흔적이려니 생각했었다. 지혈이 되지 않던 이틀 동안 나는 주코들을 증오했고, 지닌 두 벌의 바지 중 하나를 버려야만 했다…. 이상한 일이 있었다. 산에서 돌아온 뒤 그 주코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주코들을 생각하면 설산의 파노라마들이 펼쳐지고 환하게 웃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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