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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斷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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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 카메라 對 연날리기

DMZ를 건너 금강산 가는 길. 관광버스들이 갑자기 멈춰섰다. 한 버스에 인민군이 올라타 어느 관광객의 카메라를 노려봤다. "창밖을 촬영하는 걸 봤습네다." 군인은 카메라를 빼앗아갔다. 지나는 길목마다 군인들이 배치돼 관광객을 감시하고 있었다.

해금강호텔 로비. 현대 관계자가 에피소드 한토막을 들려줬다. "북한은 얼마 전까지 연 날리기 행사를 불허했습니다. '연에 원격 카메라를 달아 군 시설을 찍을 수 있다'는 게 그 이유였지요. 그런데 올 들어 수백개의 연을 날려도 막지 않고 있어요. 작지만 변화는 변화지요."

# 태도 반칙 對 금강원

구룡폭포 가는 길. 관광객 A씨가 관광증을 빼앗겼다. 소동은 다른 할아버지 관광객이 여성 감시원에게 가벼운 성적 농담을 하면서 비롯됐다. 감시원이 할아버지에게 '태도 반칙'을 했다고 따지는 장면을 A씨가 찍자 그에게 비난이 옮겨진 것이다. 남한의 농담이 여기선 통하지 않았다.

북한이 운영하는 식당 금강원. 특별한 손님만 예약을 통해 받던 이곳을 육로관광 이후 일반 관광객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관광객들의 요청에 여성 '접대원 동무'가 북한 노래 몇 곡을 뽑기도 했다.

# 적기가 對 수수막걸리

삼일포(三日浦)가 내려다 보이는 바위언덕. 영화 '실미도'에서 북파 공작원이 부르던 적기가(赤旗歌)가 새겨져 있었다. '…비겁한 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기를 지키리라'. 문득 금강산온천 주변 현수막에 적힌 '우리 식대로 살아가자'는 구호가 떠올랐다.

삼일포 주변 휴게소. 북한 주민들이 직접 북한 음식을 팔아 외화벌이를 하고 있었다. 남한돈을 내면 현대 직원을 불러 환전을 부탁하기도 했다. 단연 인기는 수수가 들어간 막걸리. 한잔에 1달러인데 줄이 수십m나 섰다. 북한은 최근 이곳을 포함해 휴게소 세 곳을 개방했다.

육로관광이 정기적으로 시작된 것은 지난해 9월. 해로(海路)에 비해 소요 시간과 경비가 팍 줄면서 4월까지 예약이 찰 정도로 인기다. 관광객이 몰리면서 북한의 태도도 '1달러짜리 수수 막걸리'만큼씩 바뀌고 있었다. 핵(核)구름이 걷히고 나면 금강산에 화해와 시장(市場)의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게 될지도…

금강산=이규연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