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나치에 대항한 바르샤바 봉기 때 청년들이 우체국 만들어 서신 전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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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1944년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 시민들은 독일 나치의 점령에 대항해 무장 봉기를 일으켰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 이들은 63일이나 버텼다. 결국 25만 명의 시민이 희생된 끝에 진압됐고, 생존자들은 대부분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그린 바르샤바 시민들의 편지와 엽서가 63년 만에 공개돼 그날의 아픔을 생생하게 보여주게 됐다.

그해 8월 1일 봉기가 시작되자마자 10대 청년들은 가장 원시적인 우체국을 만들었다. 치열한 시가 전투로 연락이 끊긴 가족과 친지에게 소식을 전하는 비둘기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이들은 편지와 엽서에 무장봉기 시대임을 나타내는 독특한 문양의 우표까지 만들어 부쳤다.

무장봉기 기간 중 이들이 날랐던 123통의 편지와 엽서가 19일 폴란드의 바르샤바 봉기박물관에서 처음 공개된다고 AP통신이 6일 보도했다.

박물관 측은 지난달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경매에서 19만 유로(약 2억 7600만원)를 내고 편지 소유권을 넘겨받았다. 박물관 측이 일부 공개한 편지와 엽서들은 이미 누렇게 색이 변했다. 바르샤바가 폐허로 변한 탓에 상당수 편지는 주인에게 배달되지 못한 미개봉 상태였다.

얀 올다코브스키 박물관장은 “당시 우체국 운영은 시민에게 ‘비록 좁은 땅이지만 독립국에 살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의미도 있었다”며 “이제야 이 편지들의 긴 여정이 끝났다”고 소회를 밝혔다.

박물관 측이 공개한 세 통의 편지는 폴란드 역사상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의 실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봉기에 참가한 한 남자는 연인에게 ‘사랑하는 베아타…. 당신 소식을 듣지 못했어요. 지금 우리는 다른 6명과 함께 있어요. 간단한 소식이라도 줘요. 마레크’라는 편지를 남겼다.

오빠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여동생은 ‘제발 짤막한 소식이라도 주세요. 엄마가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계세요…. 밤이 돼도 전혀 눈을 붙이지 못해요…. 사랑하는 여동생 모니카’라는 엽서를 보냈다.

‘안토니, 당신 아들이 다쳤소…. 우리랑 함께 있소. 내 집사람이 잘 보호하고 있소’라는 내용도 있었다.

박물관 측은 19일 진행될 편지 공개 행사에서 편지에 이름이 언급된 사람의 친지들이 참석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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