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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KAIST발 개혁 그 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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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렇게 냉정하게 퇴출시킬 줄은 몰랐다.”

“서남표 총장이 부임하기 전에 테뉴어(정년보장 교수)가 된 게 정말 다행인 것 같다.”

서남표 KAIST 총장이 최근 교수 재임용 심사에서 정교수를 포함해 6명을 탈락시켰다는 본지의 보도가 나간 뒤 KAIST 교수들의 아우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본지 3월 3일자 1면>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걱정이 많다고 할 뿐 서 총장의 정책 방향이 틀렸다는 의견은 제기하지 않았다. 서 총장의 전임인 로버트 로플린 박사도 비슷한 개혁을 시도했다. 당시 개별 교수들과 교수협의회는 연일 반대 성명서를 내며 반발하는 동시에 로플린 총장의 흠집을 들춰내 결국 그를 중도 하차하도록 만들었다. 그때와 지금은 완전히 딴판이다. 열심히 연구해 재임용 심사와 테뉴어 심사의 관문을 통과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한 교수 부인은 요즘 남편 얼굴 보기가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교수들이 밤늦게까지 연구실을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한번 교수는 영원한 교수’라는 말은 적어도 KAIST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KAIST발 대학 개혁 신호탄이 아직은 번져 나가지 않고 있다. 일부 언론이 다른 대학에서도 비슷한 바람이 일고 있는 듯 썼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게 아니다. 어떤 대학은 자신들도 KAIST처럼 한다고 했지만 비정규직의 일종인 ‘비정년 트랙’ 교수 몇 명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을 정도에 불과했다. 서울대 이장무 총장이 본지 보도 이후 교수 테뉴어 심사와 승진 심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이 그나마 고무적이다.

KAIST를 따라하는 일은 사실 어려운 것이다. 총장의 도덕성과 열정, 심사의 투명성이 확보돼야 한다. 서 총장은 KAIST 경영에 전력투구하면서 처신도 깔끔하다는 평을 듣는다. 이는 개혁 정책을 추진하려는 대학총장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대학이 살길은 서 총장이 부임 이후 끊임없이 쏟아 내는 말에서 찾아야 할 듯하다. 그는 실력 없는 교수 퇴출, 대학 재정 확충, 학생 실력 제고, 영어로 강의하기를 주문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중국 속담을 사족으로 붙이고 싶다. KAIST 바람을 이용해 교수 재임용 심사를 강화하는 척하면서 대학재단에 밉보인 교수를 자르는 구시대의 망령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물론 기우였으면 좋겠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