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죽이겠다" 식칼 꽂은 유인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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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전 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黃長燁.81) 씨가 명예회장으로 있는 '탈북자동지회' 사무실 앞에 黃씨를 살해하겠다는 협박물이 발견돼 경찰에 비상이 걸렸다.

경찰은 그동안 黃씨가 북한을 계속 비판해왔고 유인물이 그의 행적을 구체적으로 비난하고 있는 점 등으로 미뤄 단순한 장난성 위협이 아니라고 판단, 친북 활동 조직과 관련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발견 현장=8일 오전 9시쯤 서울 가락동 탈북자동지회 사무실 문 앞에서 식칼이 꽂힌 黃씨의 사진과 살해 협박 내용이 담긴 유인물 10여장이 발견됐다.

탈북자동지회 총무 金모씨는 "출근길에 黃씨 사진에 붉은색 물질이 묻은 20㎝가량의 네모난 식칼이 꽂혀 있었고, A4 용지 크기의 유인물이 바닥에 뿌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가로.세로 29x34㎝ 크기의 스티로폼 판으로 만든 협박물 위에는 영정 크기의 黃씨 사진이 붙어 있었고, 사진 이마 부근에 식칼을 꽂아 놓았다.

사진 아래에는 黃씨 이외에 黃씨와 함께 망명한 김덕홍(金德弘)전 여광무역 사장과 주 콩고 북한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있다 1991년 망명한 고영환(高英煥.현 통일정책연구소 연구위원)씨 등을 살해하겠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민족 반역자 황장엽은 각오하라'는 제목의 유인물에는 "이북의 사랑과 믿음에 배신과 변절로 대답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한마리 미친 ×처럼 반북 모략에 나서고 있다"고 비난한 뒤 "黃씨 등의 방일 행각을 저지시키고 그들을 황천길로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탈북자동지회는 99년 黃씨를 명예회장으로, 김덕홍씨를 회장으로 내세워 설립된 단체로 탈북자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경찰 수사=경찰은 최근 黃씨에 대해 '체포결사대'를 조직하는 등 黃씨의 활동을 거세게 반대해온 단체들을 중심으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북한의 직접 개입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97년 2월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의 조카인 이한영씨가 북한 공작원으로 추정되는 괴한의 권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경찰은 유인물에서 "…(黃씨가) 망발을 줴쳐대며('말을 마구하다'란 뜻)…" 등의 북한식 표현이 있어 대공 용의점에 대해 국정원 등과 합동조사에 들어갔다.

◇黃씨 행적=97년 망명 이후 6년여간 국정원 내 안전가옥에서 지내오던 黃씨는 지난해 8월 '일반 보호 대상'으로 풀려 밖에 나와 살고 있다. 현재 그는 시내 모처 별도의 가옥에서 기거하며 경찰관 4명이 24시간 근접 경호하는 등 일반 탈북자와 달리 엄격한 신변보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해 10월 말 미국 인권단체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해 북한의 인권 실태를 폭로하는 등 줄기차게 북한을 비판해왔다.

"송두율(宋斗律)씨가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라고 처음 주장했던 黃씨는 지난달에는 宋씨 사건과 관련해 법원의 비공개 증인 신문에 나서기도 했다. 黃씨는 이달 중 일본 의회에서 북한 관련 증언을 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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