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술집으로 딸 보내는 "취한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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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가출한 10대 여중.고생들이 모여 사는 서울구로구가리봉동「가출촌」에 대한 심층추적보도가 나가면서 편집국엔 독자전화가 빗발쳤다. 『중3인 딸아이가 두번째 가출했습니다.가출한 애들이 대부분 술집 접대부로 취직한다는데 내딸도 지금 어딘가에서 술을 따르고 있는 건 아닐까요.』 한 가출소녀의 아버지는『아직 솜털도 가시지 않은 어린애들을 접대부로 고용하는 업주나 그런 애들을 옆에 앉혀 놓고 술마시는 사람들을 왜 그냥 놔두느냐』며 울음을 터뜨렸다.
『가출 청소년들이 수천명씩이나 모여 집단촌을 이루고 살 때까지 교육당국과 경찰은 뭘하고 있었단 말입니까.』 유치원생 딸을둔 30대 주부는『남의 일 같지 않다』며 관계당국의 직무유기를질타했다.
낱낱이 드러나는 우리사회의 치부를 보며 기성세대들은 한결같이부끄러워하고 혀를 찼다.
5월 청소년의 달을 맞아 비행청소년들을 추적하던 취재팀은 경찰에 검거된 비행청소년들의 주거지가 가리봉동인 경우가 많다는데의문을 품게 됐다.술집에서 나체춤을 추다 붙잡힌 13세 소녀,함께 본드를 마시다 적발된 16세의 남녀,폭주족 들,강간당한 10대 소녀들….
어째서 이들의 주소가 한결같이 가리봉동일까 하는 의문은 취재팀이 현장에 도착하는 순간 모두 풀렸다.
「가출 10대들의 해방구-」.그게 가리봉동 「가출촌」의 모습이었다. 머리카락을 온통 빨갛고 파랗게 물들인 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옷차림으로 골목에 모여 담배를 피워 대는 10대 소녀들,이상한 복장의 폭주족들,어두워지면 야한 화장을 하고 출근하는 아이들….
다닥다닥 붙은 2~3평짜리 벌집방과 술집을 오가며 10대들은그렇게 시들어가고 있었다.끔찍했다.
어째서 이같은 실상이 지금껏 가려져 왔느냐에 대해 분노감마저들었다. 「가출촌」이 보도된 뒤 경찰은 일제단속에 나섰고,서울시교육청도 장학관들로 점검반을 편성해 이 지역에서 선도활동을 벌이겠다고 한다.
그러나 가출소녀들의 문제는 단순히 단속이나 선도활동 정도로 해결될 성질이 아니라는 게 취재팀의 결론이다.
기성세대 모두가 가출한 누이와 딸을 둔 오빠.아버지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그것만이 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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