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 기자의 문학터치 <130>문단에 떠도는 네이버 괴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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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한 유령이 문단을 배회하고 있다. ‘네이버’라는 유령이. 문단의 모든 세력, 그러니까 출판사와 문예지 그리고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유령을 목격했다고 속속 증언하고 있다. 귀신이 출몰했다면 굿이라도 한판 벌여야 마땅할 터. 하나 문단은 그저 수군대고 쑥덕일 따름이다. 그 웅성거림에서 일말의 불안이 감지된다.

진상은 다음과 같다. 한국을 대표하는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를 잇달아 만나 작품 연재를 타진한다는 것이다. 이미 박범신의 ‘촐라체’가 연재를 마쳤고, 시방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이 날마다 인터넷에 걸리는 판국에서 네이버의 소설 연재는 더 이상 뉴스가 못 된다.

하나 내막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네이버가 지난해 연말부터 접촉을 했거나, 접촉을 시도한 작가는 얼추 예닐곱 명에 이른다. 하나같이 당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면면이다. 20대부터 50대까지 연령도 다양하고, 문학적 성향도 제 각각이다. 이쯤에서 뉴스가 발생한다. 네이버는 현재 문단에서 통용되는 수준보다 훨씬 많은 원고료를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문단에서 유령 운운하는 이유가 예 있다. 이른바 ‘한국소설 싹쓸이’의 조짐이 불길한 것이다.

문단 공기가 하도 뒤숭숭해 네이버에 사실을 확인했다. 네이버의 입장은 외려 시원시원했다. 아래는 네이버 담당자의 답변 요지다.

“네이버 콘텐트는 10대 취향이 대부분이다. 이에 따라 콘텐트 강화 차원에서 순수문학 서비스를 시작했다. 출판사업은 전혀 계획에 없다. 네이버는 온라인에서의 본격문화 확산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터무니없는 액수의 원고료를 제시한 적도 없다. 신문 연재소설 기준을 따랐다.”

하나 네이버 측과 만났다는 작가들 얘기는 달랐다. 소위 시중 가격보다 많게는 두 배나 높았다. 이에 대한 작가 반응이 또 재미있었다. 작가 X는 “네이버가 출판사를 차리겠다는 것도 아니고 소설만 연재하겠다는 건데 좋은 거 아니냐”고 말했고, 작가 Y는 “돈으로 문학을 장악하겠다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한편, 출판사나 문예지는 심사가 복잡했다. 네이버가 출판사업에 뜻이 없다는 소식에 일단은 안도하는 기색이었다. 반면에 떨떠름한 속내도 감추지 않았다. 문단 권력구조의 변동이 뻔히 내다보여서다.

서너 해 전, 한 출판사가 문예지 창간을 준비하면서 원고료를 두 배 올린다는 소문이 돈 적이 있다. 그때 작가들은 기존 고료가 턱없이 낮았다며 은근히 환영했다. 여기서 ‘은근히’란 태도는 중요하다. 작가들은 기존 문예지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때 작가 Z가 이랬다. “2호부터는 원고 줄 수 있는데…, 아무래도 첫 호는 조금….” 작가들의 눈칫밥 탓(또는 덕)인지, 여하튼 그 출판사는 여태 문예지를 못 내고 있다.

작가 Q는 “10대가 공감하는 내용이어야 한다며 몇 가지 기준을 내놨을 때 불쾌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앞으론 모를 일이다. 문학도 자본 앞에선 그리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네이버가 한국소설을 끌어안은 건 분명 반길 일이다. 침체한 한국소설에 인터넷은 활력소가 될 수 있고, 인터넷 역시 한국소설로 인하여 건강해질 수 있다.

하나 께름칙한 기분은 영 가시지 않는다. 디지털 권력의 손짓 한 번에 휘청대는 문단이 딱해서 하는 소리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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