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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10개월만에 베일 벗은 '용팔이 사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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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권의 탄생과 몰락에서 가장 부침이 엇갈리는 인사-장세동.

5공 경호실장과 안기부장 시절 그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세도의 상징으로 인구에 회자됐다. 그만큼 그는 권력의 핵심에 근접해 있었다. 그런가 하면 5공청산 과정에서 일해재단 영빈관 건립과 관련 직권 남용 ('89년), 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 ('93년), 12.12군사반란 모의참여('96년) 혐의로 세차례에 걸쳐 구속됐다.

특히 93년 오늘(3월9일) 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일명 용팔이 사건)의 배후로 장씨가 구속되면서, 5공 정치공작의 클라이막스로 불리던 이 사건은 발생 5년 10개월만에 참모습을 드러냈다.

'용팔이 사건'은 87년 4월 21일부터 나흘간 통일 민주당 창당대회가 열린 전국 48개 지구당중 18곳이 각목·쇠파이프로 무장한 괴청년들의 기습을 받은 사건이다.

당시 정계는 민정당의 내각제개헌안 확정(86년 8월)-이민우 구상발표(86년 12월)-이철승 전 의원의 내각제 지지발언(87년 l월)-두 김씨의 신당창당선언(87년 4월 8일)-全전대통령의 호헌선언(87년 4월13일) 등으로 야당 분열이 긴박하게 전개됐던 때였다. 장세동 당시 안기부장은 이택희·이택돈 전의원 등에게 공작금 7억여원을 건넸고, 이 자금으로 호국청년연합회라는 조직폭력배 50여명을 동원해 통일민주당의 전국 지구당에 난입, 폭력을 행사하며 지구당 창당을 방해했다.

하지만 사건발생 당시에는 당내문제라는 이유로 경찰이 수사를 기피, 5공 당시 정치의혹으로 영원히 베일에 가려질뻔 했다. 6공이 들어서면서 빗발치는 여론에 떠밀린 검찰·경찰이 뒤늦은 수사가 재개하였고, 88년 9월 24일 말단배후 김용남씨, 89년 2월 11일 중요배후인물로 지목돼온 이택희 전 신민당의원이 검거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93년 당시 張씨는 자신의 혐의사실을 적극 부인했지만 법은 그에게 두번째 구속을 안겼다. 한편 이 사건으로 약 9개월간을 복역한 뒤 풀려난 장씨는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을 찾아가 "휴가 잘 다녀왔습니다"라며 큰 절을 올려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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