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수퍼맨’ 이상묵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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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교통사고를 당해 목 아래가 완전 마비된 이상묵(46)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5일 아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장애를 극복하고 왕성한 연구 활동과 강의를 계속하고 있다는 뉴스가 전해진 뒤다.

캐나다로 이민 간 장인과 장모였다. “우리 상묵이가 신문에 나왔더라”고 뿌듯해하는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전해졌다. 머리밖에 움직이지 못하게 돼 미안한 마음을 가져왔다는 이 교수는 이 전화 한 통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고 한다.

이 교수에게 쏟아진 관심은 가족뿐이 아니었다. 학교 측과 지인들의 응원 메시지가 줄을 이었다. 그의 대학 연구실은 20~30명의 취재진으로 하루 종일 북적였다.

이장무 서울대 총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이 교수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신문에서 접하고 장애인을 위한 학교 정책을 더 강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장애인을 위한 제도를 획기적으로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독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흰별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네티즌은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인 장애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약간의 불편을 줄 수 있지만 내면의 의지만은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이 교수님을 통해 깨닫게 됐다”는 글을 올렸다. 다른 네티즌(ID kang3316)은 “우리 모두가 예비 장애인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며 “장애를 갖고 있더라도 저마다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계기로 삼자”고 제안했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이상묵 교수가 연구실에서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 휠체어를 뒤로 눕히고 있다. 이 교수는 20~30분마다 휠체어를 뒤로 젖혀 몸의 압력을 분산해야 한다. [사진=김상선 기자]

한국교통장애인협회는 올해 장애인 재활극복상 후보로 이 교수를 추천하기로 했다. 이 협회의 강윤석 실장은 “이 교수의 사연은 장애인에게 재활 의지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재활극복상을 타야 될 분”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취재에 응하면서 “장애인에게 세상과 만날 수 있는 IT 기술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홍보대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간단한 소프트웨어 하나가 중증장애인에게 직업을 안겨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척추를 다쳐 전신이 마비된 뒤 막대한 돈을 기부했던 영화 ‘수퍼맨’의 크리스토퍼 리브를 자신의 영웅이라고 소개한 이 교수는 장애 때문에 강의와 연구에서 밀려선 안 된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둔다고 말했다. 자신이 ‘재활용 삶’의 본보기가 돼야겠다는 각오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로부터 ‘교육공로상’을 받았다.

이 교수는 ‘보통 아빠’로서의 꿈도 포기하지 않았다. 요즘 이 교수의 연구실 책상에는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과 게임 CD 몇 장이 놓여 있다. 매일 시간을 쪼개 연습을 한다. 고3 딸과 중3 아들, 6살 난 막내아들을 둔 이 교수는 ‘여느 아빠’처럼 아이들과 놀아주고 싶다고 했다. 특히 한창 놀아줘야 할 막내를 생각해 입으로 움직이는 마우스만으로 게임에 익숙해지려 애쓰는 중이다.

이 교수는 또 자녀들과 채팅을 할 때는 꼭 한글을 쓴다. 영어만 인식하는 음성인식 프로그램을 쓸 수 없어 일일이 화면에 보이는 한글 자판을 찍어야 해 중노동에 가깝지만 친밀감을 높이기 위한 선택이라고 한다.

‘오늘 조간 신문에서 최고의 지성을 갖추고 해양지질 공부를 위해 오대양 육대주를 누볐던 젊은 교수가 이젠 휠체어에 앉아, 그러나 의욕 있게 덤으로 주어진 삶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내 삶을 돌아봤습니다. 내게 있는 건강과, 내게 있는 기회와, 내게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한날한시도 헛되이 쓰는 일 없이 그렇게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하늘구름’ 네티즌이 블로그에 적은 글)

이 교수는 장애인에게 진정한 재활의 의지를 북돋워 줬을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평범한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수퍼맨’이 됐다.

강인식 사회부문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