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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 회장 - 오마에 겐이치 日 경제평론가 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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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최태원 회장(左)과 세계적인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가 지난 6일 서울 중구 서린동 SK 본사에서 열린 특별대담에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최 회장이 외부에 입을 연 것은 1년여만에 처음이다.[김성룡 기자]

최태원(44) SK㈜회장이 지난해 초 SK그룹의 분식회계 사태가 불거진 이후 1년여 만에 처음으로 외부에 입을 열었다. 일본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와의 대담을 통해서다. 崔회장은 이날 SK의 경영체제를 어떻게 개편해야 할지를 주된 화두로 꺼냈다.

그룹 관계자들은 "崔회장의 관심은 온통 그룹 지배구조에 가 있다"고 전했다. 대담은 서울 중구 서린동 SK본사 회의실에서 1시간20분간 영어로 이뤄졌다. 崔회장은 고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다음은 대담 요지(경어 생략). [편집자]

▶오마에 겐이치=지난 주말 중앙일보 이코노미스트 창립 20주년 기념 세미나에 참석했다. 한국의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 崔회장의 의견은.

▶최태원 회장=2만달러 달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들이 이익을 많이 내고 더욱 강해져야 한다. 다른 문제들도 해결해야 하는데, 그중에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가 중요한 문제다. SK는 특히 지난해 힘든 시간을 보냈고, 지금도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려 하고 있다.

▶오마에=일본도 기업 지배구조와 연관된 문제를 최근 몇년간 겪어왔다. 정부와 언론은 (기업의 잘못을) 지적은 하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다. 특히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는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합의하기 어렵다. 미국도 지배구조에 대한 문제를 안고 있다. 당신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회장=우리 문제는 약간 다르다. 과거에는 회장이 모든 문제를 결정하던 것을 고쳐보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런 훈련을 해 본 적이 없고, 그런 환경을 갖지도 못했다. 자본주의 역사가 짧기 때문이다. 계열사별 독립 경영시스템, 이사회 멤버들의 구성.훈련.경험 등 모든 면에서 매우 부족하다. 이런 문제는 50년 이상 걸려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결정을 내리는 위치에 있는 동안에, 각각의 이사회와 경영진에 모든 권한들을 넘겨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고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3년간 여기에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나는 이제 이사회의 한 멤버로서 행동하고 있다. 이사회를 어떻게 구성하고 운영할 것이냐가 앞으로의 과제다.

▶오마에=이전에 옳았던 것들이 지금은 아닌 것이 돼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예를 들어 회계에 관한 법령이 바뀌었을 때 기업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업인은 범법자가 돼버린다. 이사의 법적책임도 크다. 나는 과거에는 이사회 멤버를 지냈지만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 모든 이사회에서 사임했다.

▶최회장=정부와 사회는 모든 책임을 이사회에 지우고 있다. 사회로부터 압력이 너무 심할 때는 자칫 기업인들이 기업가 정신을 잃을 수 있다는 염려도 생긴다.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하는데, 미래를 잘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기업이 미래에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오마에=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란 불가능하다. 그리고 모든 정보를 갖지 못한 상황인데도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온다. 모든 나라가 그렇다. 마술같은 기업가 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최회장=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옛날 생각을 하는 분이 많다. 과거와 상황은 달라지고 있는데. 삼성전자나 삼성생명 등이 별개 기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에겐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오마에=정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조만간 선거가 있을 텐데. 외부에서 볼 때 한국 정부는 (불확실성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이해하기 어렵다.

▶최회장=기업인으로서 당연히 정치가 안정되길 원한다. 정치가 오르락내리락하면 경제 문제를 경제적인 관점에서 제대로 신경 쓰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는 지금 테스팅 과정을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마에=한국의 금융 시스템에 만족하나.

▶최회장=한국에선 재벌은 금융기관에 진출하지 못한다. 좀더 원활한 경쟁 시스템을 위해서는 그런 제한이 풀리기를 바란다. 능력이 있으면 기회가 주어지는 금융 시스템이 되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우리가 금융업에 진출할 것은 아니지만,(웃음) 문은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마에=한국의 정부나 시민들은 재벌에 대해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결국 재벌을 사랑한다. 한국에서 재벌을 제외하면 몇 개의 기업이나 얘기할 수 있는가.

▶최회장=재벌이 정치적인 권력까지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기업인이지 사회적.정치적 힘을 갖고 있지 않다. 정부는 재벌 문제를 다룰 때 정치적인 맥락에서보다는 경제적인 해결책을 사용해야 한다.

▶오마에=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최회장=더 큰 시장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칠레와 맺었고 다음은 싱가포르가 될 거라고 본다.

▶오마에=일본과의 FTA는 어떨까. 한국은 전자나 자동차 등의 산업이 어려울 터이고, 일본은 건설업 쪽이 그럴 거라고 보는데.

▶최회장=물론 변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쟁과 선택을 통해서 경제가 강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리=김승현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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