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워치] 중국식 ‘기업가 정신’ ① 苦의 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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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균 9.6% 성장, 세계 제3위 경제대국 부상’. 중국 개혁·개방 30년의 성적표다. 성공 요인은 많다. 13억 인구가 토해내는 저임 노동력과 방대한 시장, 그리고 중국 정부의 개발독재형 성장전략 등이 우선 꼽힌다. 그러나 흔히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중국의 기업가 정신이다.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않고, 한 푼 이익을 위해 밤을 지새는 기업가 근성이 오늘의 중국 경제를 일궈낸 바탕인 것이다. 중국의 기업가 정신을 5회에 걸쳐 살펴본다.

설 연휴 분위기가 채 가시지 않은 2월 23일. 저장성 이우(義烏)시의 뒷골목에 자리한 룽마(龍馬) 벨트공장. 철문을 밀치니 벨트 더미에 묻혀 작업에 여념이 없는 일꾼 서넛이 보인다. 염색 공정에서 풍기는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뿌연 먼지가 사방으로 흩날린다. 말이 공장이지 허름한 작업장과 다름없다.

“한국에서 왔습니까?” 인터뷰를 약속한 황충아이(黃崇愛·30) 사장이 다가선다. 남루한 청바지 차림이다. 땀에 전 이마를 닦으며 악수를 청하는 그에게서 ‘사장’이란 모습을 찾기 힘들다. 그러나 그는 알부자다. 지난해 600만 위안(약 7억8000만원)의 수출 실적을 올렸다. 순이익률은 15%에 달한다.

황 사장은 집이 따로 없다. 공장 2층의 작은 공간에 침대를 놓고, 부인과 아들 등 세 식구가 산다. 퇴근이 있을 리 없다. 낮에는 물건을 만들거나 바이어를 찾아 뛴다. 밤에는 디자인 작업을 한다. ‘낮엔 사장이지만 밤에는 땅바닥에서 잠을 잔다(白天當老板 晩上睡地板)’는 저장성 기업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사실 이우나 원저우(溫州) 등에선 황 사장 같은 이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이우 지역에서만 1000여 개의 벨트공장이 깔려 있다. 중국 전역으로는 551만 개에 이르는 중국 사영기업이 세계를 향해 뛰고 있다.

10년 후 황 사장은 어떤 모습일까? 원저우의 구두업체 캉나이(康奈)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정시우캉(鄭秀康) 캉나이 회장은 황 사장 나이 때 8㎡의 비좁은 집에 재봉틀 한 대를 들여 놓고 사업을 시작했다. 이웃집 할머니에게서 빌린 500위안이 창업 자금이었다. 그는 창업 28년 만인 현재 매출액 20억 위안을 올리는 대기업가로 성장했다.

이들 기업의 창업주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게 있다. 바로 ‘츠쿠(吃苦) 정신’이다.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강인한 근성이다. 츠쿠 정신으로 무장한 이들은 피 말리는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고, 또 빠르게 선진 기술을 따라 잡는다. 화교 네트워크를 활용해 해외 시장으로 뻗고 있기도 하다. “향후 10년 내 새로 탄생하는 다국적기업은 모두 중국에서 나올 것”이라는 말은 이래서 나온다.

이우·원저우=한우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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