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있는요리>닭깐풍기-주부 장명옥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인생에서 소중했던 한때는 평생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은 법.
결혼과 동시에 남편의 유학으로 7년간을 미국에서 보냈다는 주부 장명옥(張明玉.34.수원시 권선구 구운동 삼환아파트)씨의 아담한 보금자리는 유학생활을 떠올리는 갖가지 소품들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거실 한쪽벽면에 멋스럽게 걸려있 는 美 미시간대학 마크가 그려진 러그며,눈부신 5월햇살을 살짝 가린 블라인드,이국적 분위기의 작은 인형들.『대학졸업하고 철없을때 결혼한뒤 미국생활에서 참 많은 것을 배웠어요.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던 살림솜씨도 몰라보게 달라졌구요.』 된장국 하나 맛있게 끓이지 못하던 그가 「솜씨좋은」 주부로 변하기까지는 숱한 시행착오도 겪었다.달려가 도움을 청할 친정어머니도,아는 이도 없는 이국땅에서 그는 삼층밥도 지어보고 국적불명의 찌개도 끓여가면서 살림을 익혀갔다.
그러던 그가 「요리박사」(?)로 변신하는 결정적 계기를 갖게된 것은 유학생활 5년째던 92년 봄.대만 출신의 화교가 운영하는 중국식당 「후아빼이」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였다.오후5시면 식당으로 나가 점심시간동안 쌓인 접시를 닦았고 오후10시쯤에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8개월가량 지속하며 첫 사회생활경험을 맛봤다.
지금도 가장 자신있는 요리로 내세우는 닭깐풍기는 바로 그때 배운것.당시 60세가 훨씬 넘었던 마음씨좋은 화교 주인 아저씨는 70년대 명동 뒷골목에서 중국집을 경영해 故박정희 대통령도드나들만큼 솜씨가 좋았다.
산더미같은 접시를 닦고나면 언제나 배가 고팠고 그런 그에게 주인아저씨는 깐풍기.탕수육.팔보채 등 갖가지 본토 중국요리를 맛보여주며 친절하게 만드는 법까지 설명해줬다.덕분에 외국인들과의 모임에 늘 준비해가던 잡채는 매콤달콤한 맛의 깐풍기로 바뀌었고 그 접시는 가장 먼저 빈접시가 되곤 했다.
남편이 서울대 교수로 자리잡아 귀국한후 두번째 맞는 봄.그의가족들이 살았던 미시간州 렌싱시의 아름다운 봄과 가족같이 대해줬던 중국집 아저씨가 새삼 그리워진다는 그는 올해 엔 그동안 못보였던 며느리의 솜씨를 연로하신 시부모님께 한껏 선보이고 싶단다. 〈文敬蘭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