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신문화사이버펑크>2.사이버페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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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펑크 스타일의 옷가게,몸에 문신을 새겨주는 곳,무정부주의 잡지상점등 1백여개의 펑크 상점들이 빽빽이 들어선 美샌프란시스코의헤이트 거리.이 거리와 머사닉 거리가 만나는 모퉁이에 우중충한카페「커피존」이 자리잡고 있다.한구석에는「악마 주의 연극」공연광고전단이 지저분하게 흩어져 있다.
이곳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카페 한가운데 자리잡은 컴퓨터.오락실 게임기처럼 25센트짜리 동전구멍이 있다.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의 평범한 젊은이가 들어와 「새뮤얼 애덤스」흑맥주 한 병을 사들고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그가 동전을 넣자 화면에『SF-Net』라는 글자가 떠올랐다.샌프란시스코 의대생 케빈(21)은 이렇게 인터네트와 접속한 뒤 동전 8개를 사용해 30여분동안(25센트를 넣으면 4분동안 접속할 수 있다)자신의 전자우편사서함을 들여다보는 등 인터네트안의 이곳저곳을살펴보았다.
『인터네트에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게임은 물론 물건을 살 수도 있고,강의를 들을 수도 있으며,얼굴없는 여자친구를 만날 수도 있죠.실제 생활공간을 돌아다니며 하는 거의 모든 것을 컴퓨터 앞에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인터네트는 제게 있 어 또 하나의 생활공간-사이버스페이스입니다.』 2,3년전부터 미국의 대도시에는「커피존」처럼 컴퓨터를 갖춘 카페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많은 젊은이들이 언제 어디서든 정보망을 이용할 수 있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미국 젊은이들의 약 20%는 현실세계보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그들은 대부분『정보는 자유롭게 얻어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정보 사회주의자」다.또 그들중 상당수는 사이버스페이 스에 묻혀 지내느라 친구가 거의 없다.케빈도 예외는 아니었다.
케빈은 며칠전 50달러는 줘야 살수 있는 유명교수의 강의노트를 인터네트를 통해 공짜로 받았다(다운로드).그에게 이 노트를제공해 준 곳은「정보해방전선(ILF)」이라는 사설게시판.
이렇게 컴퓨터세대들은 해커들로부터 값비싼 정보를 공짜로 자유롭게 얻어보며 자연스럽게 해커들의 생각에 동조해간다.결국 그들은 기성문화와는 유리된 「사이버펑크」를 형성해 나간다.
이를 반영하듯 인터네트에는 反문화 사설전자게시판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다.포르노.무정부주의자는 물론 나치.악마주의자등도 한몫 끼어든지 오래다.「정보 사회주의」를 내세우는 언더그라운드 모임「프랙」등 일부는 전자우편을 통해 가입 을 권유하기도 한다.
미국의 대학생들은 지난해부터 열풍이 불고 있는 인터네트의 「월드 와이드 웹」에 빠져들어 밤을 지새우기 일쑤다.실리콘밸리지역의 대학생들은 기숙사에서 함께 살아도 각자 자기방에 들어가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낼 뿐 직접 이야기할 시간 도 없다는 것.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의 교제 마당인 이른바「사이버 카페」에서 정보도 얻고 휴식도 취한다.이곳은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철저히 자기 자신을 숨긴채 정보고속도로를 통해 삶과 정보를 나누는 곳이다.
『솔직히 직접 사람을 만나 친구를 사귀는 것과 다른 또다른 세상이 있어요.인터네트 안에서 완전한 익명으로 사람들을 만나고그들과 정보를 나누는 쪽이 훨씬 흥미진진하지요.』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낯선 친구를 사귀는 것은 현실세계와는 전혀 다른 일이다.이야기를 나누다 상대방이 이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대학시절 미팅에 나갈 때처럼『내 파트너는 어떤 사람일까』하는 궁금증과 설렘은 없다.사이버펑크족들이 갖는 호기심은 그저 상대방이 갖고 있는 정보에 대한 것 뿐이다.그와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다시 만나는 이유도 또다른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서다.
컴퓨터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X세대들은 보통의 관념에서생각해오던 것과는 전혀 다른 공간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며 전혀 다른 인간형이 예기치 못하는 문화를 형성해 가는 것은 미국의 문제만은 아니다.일본에선 컴퓨터에 붙어 사는 젊은이들이 「오타쿠」族이라 불리며 일상생활에선 상대방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대인기피증을 보여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蔡奎振.權赫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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