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10조 기업도 방송사 소유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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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방송위원회는 대기업 방송사업 소유 규제 완화를 내용으로 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했다. 사진은 3기 방송위원회 전체회의 장면.

방송과 통신 영역의 규제 수위를 맞추기 위해 방송산업에 대한 규제가 큰 폭으로 완화된다. 신문·방송·통신업계는 미디어 간 융합이 가속화하면서 본격화할 규제 완화의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방송위원회는 통신사업자들이 주로 참여해 올 하반기 서비스가 시작되는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IPTV)과의 규제 형평성을 위해 방송법 시행령을 개정하는 작업을 추진해 왔다. 방송통신위원회 출범과 맞물리지 않았다면, 늦어도 다음달 초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뒤 4월 시행할 계획이었다.

19일 방송위 전체회의에 보고된 시행령 개정안은 우선 방송사업 소유를 제한하는 대기업 기준을 재조정했다. 현재 자산총액 3조원 이상의 대기업은 지상파방송이나 보도·종합편성 채널 사업을 할 수 없다. 이 기준을 IPTV 사업과 같은 수준인 ‘자산 10조원 이상’으로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4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자산 3조원 이상의 기업은 52곳, 10조원 이상은 20곳(공기업 포함)이다. 따라서 자산이 3조~10조원에 해당하는 신세계·LS·현대·CJ·현대건설·코오롱·효성·이랜드 등 32개 기업은 앞으로 방송사업에 제한 없이 진출할 수 있게 됐다.

개정안은 특히 케이블 등 뉴미디어 시장에 대한 규제 완화와 투자 활성화를 지향하고 있다. 전국 케이블 사업 권역(77곳)의 5분의 1, 매출액 33% 이상을 차지하지 못하게 한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겸영 규제를 ‘가입자 기준 3분의 1 초과 금지’로 크게 완화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케이블 시장에서 인수합병이 활발해져 거대 사업자들이 속속 등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국민유선투자방송(맥쿼리-MBK 컨소시엄)의 씨앤앰 인수로 가시화된 케이블 방송시장의 구조개편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방송위가 내부적으로 확정한 시행령 개정안에는 채널 규제를 푸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SO가 운영해야 하는 TV 채널의 하한선을 현 70개에서 50개로 축소하고, 디지털 멀티미디어 이동 방송(DMB) 사업에 대해서도 채널 제한을 완화했다. 방송위 김재철 뉴미디어 부장은 “IPTV 도입에 따른 상황 변화를 반영하고 (규모의 경제로) 뉴미디어 사업의 활로를 찾고자 하는 것”이라며 “규제 수위가 다른 미디어 간의 융합과 경쟁으로 전체적인 규제가 완화되는 현상의 시작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다만 변수는 방송통신위원회 출범에 따라 일정 시간 개정 작업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는 것. 방송위 관계자는 “처음 세웠던 추진 일정을 지키기는 어려운 상태지만 방송위가 세웠던 정책 방향은 방송통신위원회에서도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문대 황근(신문방송학) 교수는 “엄격한 규제를 해온 방송과 경쟁 촉진에 초점이 맞춰진 통신이 만나면서 규제가 풀리는 건 세계적으로도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며 “곧 출범할 방송통신위원회는 여기서 그치지 말고 신문·방송·통신 등 전 미디어 산업의 규제완화 틀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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