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주꾸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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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승원(1939~ ) '주꾸미' 전문

세상에서 제일 미련한 것은 주꾸미들이다
소라껍질에 끈 달아 제놈 잡으려고
바다 밑에 놓아두면 자기들
알 낳으면서 살라고 그런 줄 알고
태평스럽게 들어가 있다
어부가 껍질을 들어올려도 도망치지 않는다
파도가 말했다
주꾸미보다 더 민망스런 족속들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만든 소라고둥 껍질 속에 들어앉은 채 누군가에게
자기들을 하늘나라로 극락으로 데려다 달라고 빈다



한 가난한 이가 길에 쓰러져 있었다. 오랫동안 씻지도 먹지도 못한 흔적이 그의 몸 깊숙이 배어 있었다. 누군가 그를 집에 데려갔다. 밥 한 그릇이 그의 눈앞에 놓였다. 가난한 이가 말했다. 이게 밥입니까…. 감사합니다…. 그는 밥을 먹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그 얼굴에 한없이 평화로운 빛이 감돌았다…. 마더 테레사의 전기에 쓰여진 이야기다. 가난하고 한없이 누추했지만 감사할 줄 아는 영혼. 자신들이 만든 윤택한 소라고둥 속에 들어앉아 하늘나라로 극락으로 데려가 달라고 빌고 또 비는 영혼. 당신이 신이라면 선택은?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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